아시아의 역사

타나 바가트 운동의 역사: 인도 부족 민족운동의 상징

이번 글에서는 인도 자르칸드 지역에서 일어난 타나 바가트(Tana Bhagat) 운동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운동은 영국 식민지 시절 부족민들이 조직적으로 전국 민족운동에 참여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타나 바가트 운동의 역사

타나 바가트 운동은 1914년 4월 21일 구믈라(Gumla) 지구 비슈누푸르 블록의 나와 톨리(Nawa Toli) 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결과로 오라온(Oraon) 부족 중심의 새로운 종교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를 '쿠룩(Kurukh) 종교' 또는 '쿠룩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자트라 바가트(Jattra Bhagat)가 이 운동의 핵심 지도자였으며, 타나 바가트 운동은 비하르 지역 부족민들이 전국적 민족운동의 흐름 속으로 진입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계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운동의 성격과 주요 요구 사항

기본적으로 이 운동은 자민다르(zamindar, 지주), 식민지 행정 당국, 그리고 디쿠(diku, 외지인)의 횡포와 착취에 맞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무장 봉기나 폭력적 투쟁 대신 헌법적이고 비폭력적인 투쟁의 길을 선택한 점이 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운동가들은 인도 국민회의의 강령과 마하트마 간디의 원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카디(수공예 직물) 사용 확산에 앞장서고 기독교 선교 활동에는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들의 핵심 요구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치권(right to self-government)의 확립,
둘째, 지주에게 내는 소작료 납부 거부,
셋째, 인간 사회의 평등 실현이었습니다.

전국 민족운동과의 연대

1919년경 이 운동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비협조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는 타나 바가트 운동가들 역시 적극 참여하여 사원 출입 거부, 주점 앞 피켓 시위 등 간디의 운동 방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따랐습니다.

이후 불복종 운동과 인도 철수 운동(Quit India Movement)에서도 이들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운동 참가자들은 인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되는 드라. 라젠드라 프라사드(Dr. Rajendra Prasad)와 비하르의 저명한 정치인 크리슈나 발라브 사하이(Krishna Ballabh Sahay)를 자신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존중했습니다. 시부(Shibu), 마야(Maya), 데비야(Deviya) 등이 이 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지도자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