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쇠퇴와 독립 국가들의 등장
아우랑제브 사후 50년 동안 델리의 왕좌에 오른 무굴 황제가 모두 8명에 달했다. 중앙 권력이 이토록 급격히 약화되면서, 1757년경에는 현재의 우타르프라데시 지역에 다섯 개의 독립 세력이 성립되었다. 메루트와 바레일리 북부는 파탄족 출신 지도자 나짐 칸이, 로힐칸드는 루헬라족이, 갠지스 중부 도아브(두 강 사이 지역)는 파루카바드 나왑이, 아우드와 동부 여러 현은 아와드 나왑이, 분델칸드는 마라타 세력이 각각 통치하고 있었다.
북인도의 운명을 결정한 두 전투
델리에서 무굴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들 세력 사이에서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졌다. 북인도의 운명은 1761년 제3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마라타·자트·라지푸트 연합군이 패배하면서 기울기 시작했고, 1764년 부크사르 전투에서 아와드 나왑 슈자웃다울라와 벵골 나왑 미르 카심이 영국 동인도회사에 패하면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영국 세력의 확장과 불평등 조약들
영국 세력은 알라하바드까지 진출했다. 아와드 나왑은 분델칸드의 마라타 세력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연합군은 칸푸르 근교 자즈마우 전투에서 영국군에게 패배했다. 그 결과 망명 중이던 무굴 황제 샤알람 2세는 동인도회사에 알라하바드 세입 가운데 연간 260만 루피를 바치고 코라(알라하바드, 칸푸르, 파테푸르) 지역을 넘겨야 했으며, 아와드 나왑 역시 영국에 연간 500만 루피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1773년 영국은 로힐칸드에서 마라타를 격파하고 도아브 지역에서 축출했다. 샤알람 황제가 알라하바드를 마라타에 넘겼다는 명분으로 이 도시는 아와드 나왑에게 반환되었다. 1774년에는 로힐라 지도자 라흐마트 칸이 샤자한푸르에서 영국군에 패배하면서 로힐칸드 역시 아와드 나왑의 손에 들어갔다.
아와드 나왑국의 몰락
1775년 슈자웃다울라가 사망하자 아사프웃다울라가 아와드의 나왑이 되었고, 영국과 체결한 새 조약을 통해 바나라스 지역의 종주권을 영국에 넘겼다. 당시 바나라스는 차이트 싱 라자의 통치 아래 있었다. 1780년 라자가 군대와 추가 재정 요구를 거절하자, 총독 워런 헤이스팅스가 직접 바나라스로 찾아가 왕을 응징하려 했다. 영국은 차이트 싱 라자가 이끄는 바나라스 반란을 진압한 뒤 마히프 나라얀 싱을 새 왕으로 세워 바나라스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했다.
1797년 아사프웃다울라가 죽자 그의 동생 사다트 알리가 아와드 나왑이 되었다. 그는 알라하바드 요새를 영국에 넘기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의 보호를 대가로 동인도회사에 매년 760만 루피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영국령 지역의 급속한 확대
19세기 초 이 지방에서 영국이 직접 지배하는 곳은 미르자푸르 내륙 일대를 포함한 바나라스 지역과 알라하바드 요새뿐이었다. 그러나 1801년 아와드의 사다트 알리는 안전 보장을 대가로 고라크푸르, 로힐칸드, 알라하바드, 파테푸르, 칸푸르, 에타와, 에타 남부, 미르자푸르 남부, 쿠마온의 테라이 파르가나 지역을 영국에 할양했다.
그다음 해에는 파루카바드 나왑도 자신의 영토를 영국에 넘겼다. 이 무렵 아와드는 북쪽을 제외한 모든 방면이 영국령 지역으로 둘러싸였다. 1803년 레이크 경이 마라타를 격파하고 알리가르, 델리, 아그라를 점령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메루트, 아그라, 델리와 더불어 반다, 하미르푸르, 잘라운 등 마라타령 인근 지역들을 손에 넣었으나, 이후 구왈리오르는 신디아에게 반환되었다. 1816년 영국-네팔 전쟁(구르카 전쟁)에서는 쿠마온과 데라둔도 획득했다.
행정 구역의 변천
이 시기까지 이 지역 전체는 벵골 관구(Bengal Presidency)의 일부로서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1833년 벵골 관구에서 분리되어 '아그라 관구'로 명명되고 주지사가 임명되었다. 1836년에는 행정 구역 이름이 '북서주(North-West Province)'로 바뀌었으며, 아그라, 잔시, 잘라운과 더불어 델리와 아제메르 지역도 이 주에 편입되었다.
이후 마르와르, 분델칸드, 하미르푸르가 차례로 포함되었고, 1856년에는 아우드(Oudh)까지 병합되었다. 1857년 세포 항쟁 이후에는 델리 지역이 펀자브로 이관되고, 테라이 일부는 네팔에, 바레일리와 모라다바드의 일부 지역은 람푸르 나왑에게, 사가르는 중앙주(Central Province)로 넘어갔다. 1871년에는 마르와르가 아제메르의 인도 정부 관할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