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천황 퀴즈] 일본 천황 이름에 붙는 '후(後)'의 의미는? '덕(德)'자는 원한을 달래기 위해서?

일본 역사의 천황들을 살펴보면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처럼 이름에 '후(後)'가 붙은 인물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다음 세대 천황에게 '후'를 덧붙인 것일까요? 쉽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다릅니다. 만약 그런 규칙이라면 고다이고 천황 다음에는 '고고다이고 천황'이 즉위해야 할 텐데요, 그러면 '후'투성이가 되어 버리고 말겠죠.

이번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쉽게 지나쳐 버리는, 천황 이름 속 '후'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천황 퀴즈] 일본 천황 이름에 붙는  후(後) 의 의미는?  덕(德) 자는 원한을 달래기 위해서?

천황의 이름은 사후에 붙여진다!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생전의 천황은 '미카도(帝)'라고 불렸을 뿐 "XX 천황!"이라고 호칭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부르는 'XX 천황'이라는 이름은 사후에 붙여지는 것입니다.

이름에는 '시호'와 '추호' 두 종류가 있다

시호(諡號)는 선대 천황의 업적을 기리며 붙인 이름입니다. 초대 진무 천황(神武天皇)의 경우 '신과 같은 무공을 지닌 천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추호(追号)는 천황이 거주했던 땅, 관련된 사찰이나 능묘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시호보다는 다소 가벼운 성격을 지닙니다. 알기 쉬운 예로 제51대 헤이제이 천황(平城天皇)은 도읍 헤이조쿄(平城京)와 연관된다는 이유로 이 이름을 얻었습니다.

'후'가 붙은 천황은 총 28명!

이름에 '후'를 붙이는 것을 추호라고 부르며, 이러한 천황은 모두 28명에 이릅니다.

추호에 '후'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68대 고이치조 천황부터입니다. 제66대 이치조 천황은 어궁(里内裏)의 이름에서 시호를 받았지만, 그 뒤를 이은 고이치조 천황에게는 같은 방식의 이름 대신 '후'를 붙이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간단한 방법이죠. 천황의 존재감이 옅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이 무렵부터는 생전에 스스로 이름을 정하는 천황도 등장합니다. 겐지·헤이시의 흥망사로 유명한 미나모토노 요리토omo,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대립한 고시라카와 천황,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충돌한 고다이고 천황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천황은 이상적인 존재로 여겨졌고, 그 뜻을 잇는 후계자라는 의미로 '후'가 붙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후'가 붙은 천황들은 요리토모나 기요모리 같은 유명 무장들과 싸운 경우가 많았으며, 전통을 과감히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인물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덕(德)' 자는 원한을 달래기 위한 것?

제75대 스토쿠 천황(崇徳天皇), 제81대 안토쿠 천황(安徳天皇) 등의 이름에는 공통적으로 '덕(德)' 자가 들어갑니다.

이 시대 대부분의 천황에게는 추호가 붙었지만, 드물게 업적과 의미를 담은 시호가 붙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중 '덕' 자는 불행하게 요절한 천황이 원망(怨念)을 남기지 않도록 달래주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당시에는 원령(怨霊)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해서,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누군가의 원한 탓으로 여기고 이를 진정시키려 애썼습니다.

원령이 된 스토쿠 천황

스토쿠 천황은 이복 동생인 고시라카와 천황과 벌인 호겐의 난(保元の乱)에서 패배하여 사누키국(현 가가와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대마왕이 되어 천황을 저주하겠다"며 원한에 불타올랐고, 오늘날 일본 3대 원령 중 하나로 꼽힙니다.

6세에 요절한 안토쿠 천황

안토쿠 천황은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딸 도쿠코(建礼門院)의 아들로, 헤이케(平家)의 번영을 기원하며 겨우 1년 4개월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물론 어린 천황이 정치를 주도할 수는 없었고, 이는 헤이케가 정권을 장악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후 기요모리가 사망하고 겐지의 세력이 기세를 얻으면서 다이라씨는 수도에서 쫓겨나 안토쿠 천황과 함께 도피합니다. 그리고 다이라씨가 멸망한 땅 단노우라(현 야마구치현)에서, 안토쿠 천황은 6세의 어린 나이로 바다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실패한 준토쿠 천황

제84대 준토쿠 천황(順徳天皇)은 성격이 매우 강렬했다고 전해지며, 아버지인 제82대 고토바 천황(後鳥羽天皇)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조큐의 난(承久の乱)을 일으켜 가마쿠라 막부 타도를 꾀했으나 실패하고 사도(佐渡)로 유배됩니다.

교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그는 음식을 끊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 고토바 천황 역시 오키 제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로 고토바 천황에게는 처음 '겐토쿠(顕徳)'라는 시호가 정해졌으나, 훗날 '고토바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마무리

이번 글에서는 천황 이름에 숨겨진 '후'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천황이 후계자의 이상을 상징한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름 자체가 사후에 붙여진다는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정하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죽은 뒤에 평생의 업적을 담아 이름을 받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훗날 좋은 이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