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포르투갈은 어떻게 아시아 해상 무역의 판도를 장악하게 되었나?

유럽을 넘어선 대탐험의 시작

포르투갈은 초기 탐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빠르게 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1419년부터 1433년까지 항해왕자 엔히크(헨리)는 매년 여름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더 남쪽으로 나아가는 탐사 항해를 주도했습니다.

이 시기 포르투갈의 원정은 사하라 무역 독점에서 얻은 이익으로 재원을 마련했지만, 그 진짜 목표는 아시아 무역의 지배권을 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우선 과제는 북아프리카 연안을 장악하여 무슬림 세력의 지중해 지배를 종식시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육상의 대상(隊商) 루트를 대체할 인도행 해상 항로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광활한 대서양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인도행 해상 항로의 발견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서아프리카를 지난 뒤에도 인도로 통하는 항로를 계속 추적했습니다. 1487년,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고, 아프리카 해안선이 북동쪽으로 꺾이는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귀환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는 바스쿠 다 가마에게 4척의 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까지 항해할 임무를 맡겼습니다. 다 가마는 1497년 여름 출항하여 1498년 5월 인도의 주요 무역항이던 칼리컷에 도착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유럽 항해사들이 백 년 넘게 좇아왔던 숙원 사업을 마침내 완수한 것입니다.

말라카 정복과 동방 무역로 장악

1511년,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동남아시아 무역의 요충지였던 말라카를 정복하면서 포르투갈은 아시아 향신료 무역을 지배한다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교역로를 손에 넣었고, 중국과의 직접 무역도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 해외 제국의 건설

포르투갈은 아시아 향신료 무역 장악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습니다. 나아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 무역 거점과 식민지를 두는 광대한 해외 제국을 구축했습니다. 이 제국은 해상 항로에 대한 통제와 현지 자원 및 노동력의 착취 위에 세워졌습니다.

포르투갈은 한 세기 이상 아시아 향신료 무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영국 등 다른 유럽 열강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고, 17세기 말에는 아시아 무역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