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후버 행정부는 일본 팽창주의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1. 켈로그-브리앙 조약(1928):

후버는 국가 정책의 도구로서 전쟁을 포기하는 이 국제 조약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집행 메커니즘이 부족했고 일본의 침략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2. 스팀슨 교리(1932):

일본의 만주 침공 이후, 후버의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은 미국이 공격적인 행위로 인한 어떤 영토 변화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상징적이었다.

3. 비인정 정책:

후버 정권은 만주침략 이후 수립된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정책은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일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4. 제한된 경제적 조치:

후버는 관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잠재적으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본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그는 일부 무역 제한을 시행했지만 일본의 침략을 억제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5. 해군 군축:

후버 행정부는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강대국 간의 해군 규모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 1930년 런던 해군 조약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후속 군사화로 인해 이 조약은 일본의 팽창주의를 막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요약하면,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한 후버 행정부의 접근 방식은 신중하고 자제적이었다. 불인정, 제한된 경제제재 등 외교적 조치를 취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일본의 계속되는 침략을 막는 데 역부족임이 드러났고, 결국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