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1941년 일본군은 클라크 필드를 공격했을까? 진주만과 함께 시작된 필리핀 기습

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1941년 12월 8일(국제날짜변경선 때문에 하와이 현지 시간으로는 12월 7일), 일본군은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다른 미군 시설들 역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필리핀 루손섬에 위치한 클라크 필드(Clark Field)였습니다.

클라크 필드 공격의 배경

클라크 필드는 당시 미극동육군항공대(Far East Air Force)의 핵심 거점으로, B-17 중폭격기를 운용할 수 있는 미국이 극동 지역에 보유한 최대 규모의 항공기지였습니다. 진주만 공격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당시 일본령이던 대만(포르모사)에서 발진한 일본 육군 항공대의 폭격기와 전투기 편대가 클라크 필드와 인근 이바 필드를 덮쳤습니다.

기습의 결과

미군은 개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기습당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지상에 주둔 중이던 B-17 폭격기 다수와 P-40 전투기 상당수가 격파되었고, 미국은 필리핀 방어에 투입할 수 있는 항공 전력의 대부분을 단 한 번의 공습으로 잃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필리핀을 비교적 수월하게 침공할 수 있었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필리핀 연합군은 바탄반도와 코레히도르 요새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클라크 필드 공격은 진주만 공격과 함께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연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국제날짜변경선의 영향으로 두 공격이 서로 다른 날짜에 기록되지만, 실제 시간 순서로는 클라크 필드 공격이 진주만 공격보다 약 9시간가량 늦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일본군은 진주만의 성공 소식을 확인한 뒤에도 필리핀 방공망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