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진주만 기습 당시 일본 대사관은 왜 최후통첩 전달에 실패했을까?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하와이 진주만에 주둔하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워싱턴 D.C. 주재 일본 대사관은 이 공격 이전에 미국 정부에 최후통첩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빚어진 결과였습니다.

14개 조항으로 된 장문의 외교 각서

일본 정부는 원래 공격 개시 직전인 워싱턴 시간으로 오후 1시, 국무장관 코델 헐(Cordell Hull)을 만나 '14개 부분으로 구성된 각서'를 전달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각서는 사실상 협상 결렬과 국교 단절을 통고하는 문서로, 도쿄 본국에서 암호 전문의 형태로 대사관에 발송되었습니다.

암호 해독과 타이핑 작업의 지연

문제는 각서의 분량이 너무 길었다는 점입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방대한 암호문을 해독하고 영문으로 번역한 뒤 타이핑하는 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14번째 부분은 시간이 극도로 촉박하여 타이핑조차 여유가 없어 손으로 직접 작성될 정도였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후에야 전달된 각서

결국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郎) 대사와 구루스 사부로(来栖三郎) 특명전권공사가 헐 국무장관에게 각서를 전달한 시점은 오후 2시 20분경, 즉 진주만 공격이 이미 한창 진행된 이후였습니다. 이미 공격 소식을 접한 상태였던 헐 국무장관은 분노에 찬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역사적 의미와 여파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이미 일본의 외교 암호를 해독하는 '매직(MAGIC)' 체계를 가동 중이어서 각서의 내용 자체는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공격의 정확한 시점과 장소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지연된 최후통첩은 일본의 '배신적인 기습 공격'이라는 이미지를 굳혔고, 평소 고립주의 여론이 강했던 미국 사회를 전쟁 참여 쪽으로 결정적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