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그 유명한 일대일 대결은 실화였을까?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그 유명한 일대일 대결은 실화였을까?

가와나카지마(川中島) 전투.

악귀 같은 위용의 갑주에 흰 머리가 나부끼는 투구를 쓰고 군배(軍配)를 든 다케다 신겐.

흰 두건에 백마를 타고 미남풍으로 그려진 우에스기 겐신.

이 두 사람이 마주 선 그림은 꽤 유명하죠. '영원한 라이벌'로 묘사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바로 이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어떤 전투였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발단

고슈(甲斐, 야마나시현)의 센고쿠 다이묘 다케다 신겐은 세력 확장을 위해 시나노(信濃, 나가노현)를 침공합니다. 북쪽으로 진격하며 시나노국을 차지해 나갔죠.

시나노국 북부인 가와나카지마를 공격하던 때, 마침내 우에스기 겐신이 등장합니다.

에치고국(越後, 니가타현)을 다스리던 겐신은 기타 시나노를 지배하던 세력들과 인척 관계였기에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인 것입니다.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신겐은 영토 확장을 위해, 겐신은 영토 방어를 위해 싸웠습니다.

12년 동안 '가와나카지마'에서 무려 5차례 대결!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그 유명한 일대일 대결은 실화였을까?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총 다섯 번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당시 두 사람의 이름은 각각 '다케다 하루노부(晴信)'와 '나가오 카게토라(景虎)'였습니다. 헷갈리기 쉬우니 모두가 잘 아는 신겐과 겐신으로 지칭하겠습니다.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 신겐 32세, 겐신 23세

다케다 가문이 기타 시나노의 무라카미 가문과 싸우고 있을 때, 무라카미 가문이 겐신에게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아직 '다케다 vs 우에스기'라는 구도는 아니었고, 큰 전투로 번지지 않은 채 약 한 달간 대치한 후 양측 모두 병력을 철수했습니다. 양쪽 모두 목적을 달성한 전투였으므로 무승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 신겐 34세, 겐신 25세

신겐은 센고쿠 다이묘인 이마가와 가문, 호조 가문과 동맹을 맺습니다. 호조 가문은 겐신과 대립 관계였기에, 이 동맹 역시 그런 목적에서 맺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겐과 겐신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고 두 번째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200일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서로 대치하게 되죠.

그러나 이번에도 큰 전투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마가와 가문의 중재로 화해했습니다. 역시 무승부입니다.

제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 신겐 36세, 겐신 27세

겐신은 출진 전 사당에서 '다케다 멸망'을 기원할 정도로 이번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호조 가문도 신겐의 편에 합류하면서 신겐 역시 사기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규모 전투는 없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커다란 사건 발생 시 겐신의 도움을 받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쇼군의 중재로 화해하며 전쟁이 마무리됐습니다. 역시 무승부겠죠.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절정은 단연 4번째!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그 유명한 일대일 대결은 실화였을까?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 신겐 40세, 겐신 31세

이것이 유일한 대규모 전투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바로 이 전투를 가리킵니다.

겐신은 나가노 분지 남부의 사이조산(妻女山)에 진을 쳤습니다. 소식을 접한 신겐은 나가노 분지 서쪽의 차우스야마(茶臼山)에 진을 쳤고, 치쿠마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조산과 마주 보는 시오자키성에 입성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후 사이조산 북쪽의 가이즈성(海津城)에 들어갑니다.

대치가 계속되자 신겐의 가신들은 하나의 계책을 고안합니다. 병력을 둘로 나누어 사이조산의 우에스기군 배후를 기습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우에스기군을 주력 부대가 매복해 습격한다는 전략입니다. 이것이 바로 '딱따구리 전술(啄木鳥戦法)'입니다.

덧붙이자면, 당시 사람들은 딱따구리가 곤충을 잡을 때 저런 방식을 쓴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딱따구리는 그렇게 먹이를 잡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겐신은 오히려 신겐의 계획을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밤 안개가 짙을 때 산을 내려왔던 것입니다.

오전 8시경, 안개가 걷히자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우에스기군이 모습을 드러냈고, 다케다 본진은 순식간에 와해되며 다케다 시게오미(信繁) 등이 잇달아 전사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겐과 겐신의 일대일 대결 장면은 바로 다케다 본진이 붕괴한 바로 그 순간을 그린 것입니다.

오전 10시경, 다케다 별동대가 도착하면서 전황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이번에는 우에스기군이 협공당하며 열세에 몰렸고,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케다군 역시 오후 4시경 철수했습니다. 사망자만 7천 명을 넘긴 격전이었습니다.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했지만, 후세의 평가는 '전반전은 우에스기, 후반전은 다케다'입니다. 즉 무승부라는 뜻이죠.

제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 신겐 43세, 겐신 34세

두 달간의 대치로 끝난 무승부였습니다.

다섯 번의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승부가 결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야말로 진정한 라이벌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제4차 전투의 유명한 장면들은 지어진 이야기일까?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 그 유명한 일대일 대결은 실화였을까?

실제로 남겨진 사료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군키모노가타리(軍記物語)뿐입니다. 다만 이 시기 이곳에서 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확실합니다.

다케다군의 '딱따구리 전술'을 간파한 우에스기군이 움직였다는 이 드라마틱한 전개는 사실 창작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실제로는 두 군대가 짙은 안개 속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는 '우연한 조우설'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학설입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에서, 신겐과 맞선 상대는 겐신이 아니라 우에스기군의 다른 무장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다케다 측과 우에스기 측에 남겨진 사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케다 측 사료에 따르면 신겐과 싸운 것은 겐신이며, 후에 그것이 겐신임이 확인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우에스기 측 사료에는 분명 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훗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얽힌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혼노지의 변의 오다 노부나가, 아케치 미츠히데, 그리고 승려 덴카이(天海)가 가와나카지마에서 이 전투를 목격했다는 설이 있는데, 덴카이가 그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 "저건 내가 아니라 그림자 무사(影武者)였다!"라며 엇갈린 답변이 나왔다고 하죠.

결국 모두 자기 편의대로 이야기를 바꿔 온 셈입니다.

하지만 역사에 얽힌 다양한 학설을 즐기는 것 또한 역사의 참맛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