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자 유일하게 이혼 경험이 있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로널드 레이건
로널드 레이건은 1911년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계 개신교 신자였으며, 레이건 본인은 11세 때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1928년 유리카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일하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영화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 선전 영상 제작에 참여해 활약했고, 결국 소령 계급으로 예편했습니다.
예편 후에는 할리우드 배우 조합 의장을 맡았습니다. 이 시기 그는 같은 공화당원이었던 닉슨, 매카시와 함께 매카시즘에 협조하며 공산주의자 색출에 앞장섰습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찰리 채플린 추방 사건으로 상징되는 '붉은 공포(Red Scare)'가 만연했고, 명백히 공산주의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당 당원으로 의심받는 억울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종교개혁 이후 벌어졌던 마녀사냥과 비슷한 면모를 보입니다.
1967년에는 할리우드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의 주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주지사 재임 중 그는 "베트남을 불태워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80년 대선에서는 경제 회복에 실패한 지미 카터를 누르고 승리하며 미국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미국 제40대 대통령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강한 미국'의 실현, 즉 이른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요약됩니다.
데탕트로 흐르던 대소 관계는 순식간에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전략방위구상(SDI)이라 불리는 첨단 방위 구상이 발표되면서 군비가 확장되었습니다. 이를 재원하기 위해 사회복지 지출이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또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불립니다. 기존 노선보다 더 강경한 자세를 보였고, 요컨대 "미국이 넘버 원!"이라는 구호 아래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과시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후버 시절에서 보듯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레이건은 수정 자본주의를 견지하는 가운데 통화량 조절 등을 통해 경제에 개입하고 시장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닉슨 쇼크의 여파는 컸습니다. 특히 대일 무역적자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고, 군사비 확대로 인해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결국 미국은 전후 이어져 온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발생한 이른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을 구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화 고평가를 바로잡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에 도달했습니다.
한편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집권하며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자, 레이건의 대소 태도는 순식간에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는 중거리핵전력(INF) 폐기 조약에 합의했고, 냉전 종식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릴 수 있는 카리브해 지역에 대해서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외교와 흡사한 강경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에 개입했고, 1983년에는 인구 약 10만 명의 작은 나라 그레나다에까지 군대를 파견해 침공했습니다.
2004년 레이건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3세였습니다.
레이건에 대한 평가
레이건의 평판은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서 높은 편입니다.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드물며, 대체로 역대 대통령 평가 순위 10~30위권 안에 들곤 합니다.
레이건은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만한 미국'을 만든 대통령이자, 좋든 싫든 현대 미국을 만든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쌍둥이 적자로 대표되는 경제 실정, 카리브해에 대한 강경한 태도, 경제정책 실패의 산물인 플라자 합의 등 연이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습니다.
실제로 레이건은 내정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억류되었던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보상을 지급했으며,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미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맞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습니다.
결국 레이건은 미국인이 아닌 시각에서 보면 실정 투성이의 대통령이지만, 미국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훌륭한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