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대통령에 오른 가문은 단 두 곳뿐입니다.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부자, 그리고 부시 부자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에서 '파파 부시'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 W. Bush)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조지 H. W. 부시
조지 H. W. 부시는 1924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군에 자원입대했고, 태평양 전선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소부(小父) 함상 공격기 조종사로 활약했으며, 오가사와라(硫黄島 인근) 해역 상공에서 비행 임무 수행 중 일본군의 공격으로 격추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동료들의 구조로 목숨을 건졌고, 이후 뛰어난 비행 실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훈장을 받으며 해군 대위로 예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한 부시는 예일대학교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텍사스주로 이주해 석유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4년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며 정계 입문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후 하원의원, 유엔 대사, 공화당 위원장, CIA 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특히 CIA 국장 재임 시절 쌓은 정보·외교 분야의 경험은 훗날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선출되어 8년간 레이건의 오른팔로 활약했습니다.
미국 제41대 대통령으로서의 시대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H. W. 부시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의 세계는 전례 없는 격변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9년 동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며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그해 11월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부시는 몰타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회담을 갖고 냉전의 종식을 사실상 선언했습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고, 더 이상 미국의 발목을 잡을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시는 적극적인 외교·군사 개입 노선을 폈습니다. 1989년에는 파나마의 노리에가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미군을 파견했으며, 1990년에는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다국적군을 결성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걸프전입니다.
'세계의 경찰'이라 불리며 세계 곳곳의 문제에 깊이 관여한 부시였지만, 정작 국내 문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 회복을 내건 빌 클린턴에게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결국 한 번의 임기로 대통령직을 마감했습니다.
퇴임 후에는 눈에 띄는 공개 활동보다는 아들 조지 W. 부시의 정치 행보를 그늘에서 응원하는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2018년, 조지 H. W. 부시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지 H. W. 부시에 대한 평가
공화당 출신 대통령답게 부시는 부유층에게 우호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석유 사업 출신다운 안목으로 에너지 정세를 꿰고 있었고, CIA 국장 시절부터 쌓은 인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그의 외교 노선은 레이건 시대의 강경한 미국 노선을 계승한 것으로, 당시 미국 내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반면 국내 정치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닉슨 시대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국 역사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단임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냉전의 평화로운 종식과 걸프전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의 외교적 리더십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