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남북전쟁 당시 플로리다는 어느 편이었을까? 연방 탈퇴부터 남부동맹 지지까지

남북전쟁(1861~1865) 당시 플로리다 주민 대다수는 남부동맹(남부연합) 편에 섰습니다. 노예제 경제와 깊이 얽혀 있던 남부 농업 주였던 플로리다는 전쟁 발발 이전부터 남부 여러 주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주 중 하나였습니다.

1861년, 연방 탈퇴와 남부동맹 창립 멤버

플로리다는 1861년 1월 10일 미합중국(연방)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습니다. 이는 사우스캐롤라이나(1860년 12월), 미시시피(1861년 1월 9일)에 이은 세 번째 탈퇴였으며, 플로리다는 곧이어 남부동맹(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창립 멤버로 가입하게 됩니다.

약 15,000명의 플로리다 출신 남군 병사

당시 플로리다의 총인구는 약 14만 명 수준으로 오늘날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주였지만, 그럼에도 약 15,000명의 병사를 남부동맹군에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게티스버그 전투 등 여러 주요 전투에서 남군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특히 1864년 올러스티 전투(BATTLE OF OLUSTEE)는 플로리다 땅에서 벌어진 남북전쟁 최대 규모의 전투로, 남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작은 주가 감당한 큰 역할, 그리고 논란

인구가 적었음에도 플로리다의 전략적 가치는 컸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생산된 소금은 식량 저장에 필수적인 자원이었고, 방대한 목장에서 공급된 소고기는 남군 부대의 식량 보급을 책임졌습니다. 또한 수도 탤래해시(TALLAHASSEE)는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 연방군에게 함락되지 않은 유일한 남부동맹 주도로 남았습니다.

이처럼 플로리다는 규모에 비해 남북전쟁에서 상대적으로 큰 역할을 수행했지만, 일부 주민은 연방에 잔류하거나 중립 입장을 유지하는 등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렸다는 점에서 그 역할은 다소 논란의 여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