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셀마 전투(앨라배마)에 참전한 북군 병력은 몇 명이었을까?

미국 남북전쟁 말기인 1865년 4월 2일,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는 제임스 H. 윌슨(James H. Wilson) 준장이 이끄는 북군(연방군) 기병대와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Nathan Bedford Forrest) 장군이 지휘하는 남부동맹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셀마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는 윌슨의 앨라배마 원정, 즉 '윌슨 레이드(Wilson's Raid)'의 결정적인 국면이었습니다.

북군 참전 병력은 약 9,000명

셀마 전투에 직접 투입된 북군 병력은 약 9,000명으로 추산됩니다. 윌슨 장군은 테네시주에서 출발할 당시 약 13,000~13,500명 규모의 기병군단을 이끌었으나, 진격 도중 부대를 여러 갈래로 분산 배치하면서 실제 셀마 공격에 가담한 병력은 9,000명 안팎이었습니다.

남부동맹군의 방어와 전투 경과

방어측인 남부동맹군은 포레스트 장군 휘하 약 4,000~5,000명에 불과했으며, 상당수는 훈련이 부족한 주방위 민병대였습니다. 북군은 셀마 교외 에버니저 처치(Ebenezer Church) 부근에서 선제 공격을 감행해 남부동맹군의 저항선을 돌파했고, 이후 요새화된 방어선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역사적 의의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바탕으로 한 북군의 공세 끝에 셀마는 함락되었습니다. 북군은 이곳에 있던 남부 최대급 군수 산업 시설들, 즉 조선소·무기고·탄약 공장·주물 공장 등을 대거 파괴함으로써 남부동맹의 전쟁 수행 능력에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이 전투는 종전 직전 남부 심장부를 무너뜨린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주변 지역에서의 교전

참고로 윌슨 부대는 셀마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인근 매리언(Marion), 유니언타운(Uniontown), 카하바(Cahaba) 등 앨라배마 중부 여러 지역에서도 소규모 교전과 정찰 작전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전들은 셀마 본 전투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