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델라웨어·켄터키·메릴랜드·미주리, 경계주 4개 주의 노예제는 어떻게 폐지되었을까?

델라웨어, 켄터키, 메릴랜드, 미주리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경계주(Border States)'로 불린 지역들로, 북부와 남부 사이에 위치해 있어 노예제의 운명이 법과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네 개 주 각각의 노예제 폐지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델라웨어 — 최초의 점진적 폐지 선언

델라웨어는 1787년, 점진적 노예제 폐지를 도입한 최초의 주가 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노예 신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25세에 자유를 얻었고, 남아 있는 모든 노예는 1827년까지 자유로워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완전 해방은 1827년이 아니라 훨씬 늦은 1865년,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13th Amendment)가 전국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면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2. 켄터키 — 끝까지 저항한 노예주

켄터키는 건주 초기부터 내내 노예주로 남았습니다. 켄터키의 노예 관련 법률은 노예들의 권리와 자유를 철저히 제한했으며, 노예 소유주들에게 그들의 삶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부여했습니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노예 소유주들과 그 지지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결국 켄터키는 1865년 수정 제13조 비준 이후에야 노예제를 완전히 없애게 됩니다.

3. 메릴랜드 — 늦게 결실을 맺은 반노예제 운동

메릴랜드는 건주 시절부터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될 때까지 노예주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초기에는 점진적 해방을 추진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실제 시행 과정에서 여러 장애물에 부딪혔습니다.

반노예제 운동은 꾸준히 성장했지만, 상당한 정치적 추진력을 얻기까지는 1850~60년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메릴랜드의 노예법은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엄격하고 억압적인 형태로 유지되었습니다. 마침내 1865년 수정 제13조의 비준과 함께 메릴랜드에서도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4. 미주리 — 대립과 갈등의 중심

미주리는 1821년 연방 가입과 함께 노예주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주리의 노예주 승격 여부를 두고 '미주리 타협(Missouri Compromise)'이라는 국가적 논쟁이 벌어질 만큼, 이 지역은 노예제 문제의 최전선이었습니다.

19세기 내내 미주리에서는 친노예제 세력과 반노예제 세력이 격렬하게 충돌했으며, 새 영토로의 노예제 확장 문제와 결부되어 긴장이 계속되었습니다. 법적으로도 노예제와 관련 관행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미주리는 1865년 남북전쟁이 종결되고 수정 제13조가 발효될 때까지 노예주로 남았습니다.

마무리

요컨대 네 경계주 모두 자체적으로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못했으며, 최종적인 해방은 1865년 헌법 수정 제13조를 통해 전국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델라웨어처럼 조기에 점진적 폐지를 선언한 주가 있는가 하면, 켄터키처럼 끝까지 기존 질서를 고수한 주도 있었다는 점에서 각 주의 노예제 폐지 경로는 서로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