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미국 법정에서 살아 숨 쉬는 13세기 카스티야 법전, '시에테 파르티다스'의 놀라운 생존기

미국은 1776년 동부 해안의 영국 13개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하며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문화와 제도 곳곳에는 의외로 깊은 스페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달러'라는 화폐 단위의 스페인어 기원,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국회의사당 내 프라이 후니페로 세라(Fray Junípero Serra) 동상, 미국 동전과 우표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인 가톨릭 이사벨라 여왕, 그리고 무수히 많은 스페인식 지명까지 그 예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13세기 카스티야 왕국의 법전, 바로 시에테 파르티다스(Siete Partidas)가 오늘날에도 여러 주의 법학에서 실제로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89년 한 해에만 루이지애나,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대법원에서 시에테 파르티다스를 인용한 판결이 300건을 넘었습니다.

미국 법정에서 살아 숨 쉬는 13세기 카스티야 법전,  시에테 파르티다스 의 놀라운 생존기

일곱 부(部)로 이루어진 중세의 위대한 법전

시에테 파르티다스는 '현명왕' 알폰소 10세 엘 사비오(Alfonso X el Sabio) 통치 기간인 13세기에, 왕국의 법적 통일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카스티야에서 작성된 법 체계입니다. 단순한 법 조문의 집합이 아니라 당대의 문학, 과학, 철학 저작까지 폭넓게 인용하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 백과사전적 성격을 지닙니다. 구성은 총 7부로, 제1부는 교회법, 제2부는 정치법, 제3부는 절차법, 제4~6부는 민사 등 사법 분야, 제7부는 형법을 다룹니다.

이 법전은 서유럽 전역에 알려져 다양한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절차법과 사법 관련 규칙(제3, 4, 5, 6부)은 1889년 스페인 민법이 제정될 때까지 유효했습니다. 13세기부터 1889년까지 600년 이상 시행되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카스티야령 영토에서도 자연스럽게 적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영토들이 독립한 뒤에도 수 세기 동안 사회의 뿌리였던 스페인법은 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규정이 하나둘 공포되는 가운데 기존 법률과 공존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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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독립 이후에도 이어진 스페인법의 전통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1857년 승인된 멕시코 공화국 정치 헌법에는 "언급되지 않았거나 의심스러운 사안에 대해서는 스페인 푸에로스(fueros)와 라스 시에테 파르티다스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멕시코 의회가 국내 규정과 충돌하지 않는 한 스페인 절차 규칙을 계속 적용해야 한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멕시코 전쟁 이후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새로운 국경이 그어지면서, 멕시코는 오늘날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뉴멕시코, 텍사스 주와 애리조나, 콜로라도, 와이오밍, 오클라호마의 일부를 상실했습니다. 새 나라의 영토가 된 이 지역들 역시 특히 부동산 소유권과 관련해서는 기존 법률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전쟁을 종결한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에는 잃어버린 땅의 재산권 보장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상기 영토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재산과 현재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멕시코인에게 속한 재산은 존중됩니다. 현재 소유자와 상속인은 마치 미국 시민에게 속한 재산처럼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 법정에 등장하는 중세 법 조항들

한때 멕시코 영토였던 주들에서 시에테 파르티다스가 인용된 소송은 대부분 재산 소유권, 유언장, 토지법, 물 권리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시가 공공 목적으로 란초 발로나(Rancho Ballona) 부지의 일부, 특히 해안 일대를 취득하려 한 건이 있습니다. 법원은 제3부(파르티다 테르세라)의 조항에 근거해 시(市)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공기, 빗물, 바다와 해안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공동으로 속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필요에 따라 이를 각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851년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남성이 사망 직전, 상속 재산 분배에 앞서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매각해 빚을 갚으라는 유언장을 남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딸들은 고인의 아내 재산 중 일부는 처분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그 근거로 제4부의 조항을 들었습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그리고 아내에게는 동등하게 속하는 재산의 파트너십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속한 재산의 몫을 '팔거나 양도하거나 잃게 할' 수 없습니다."

흥미롭게도 13세기 문서에 근거한 항소에 더해, 영어로 작성된 법률 문서에는 중세 카스티야어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27년 텍사스에서는 제3부를 근거로 석유 탐사 허가를 받은 회사가 프리오 강을 따라 토지를 회수한 사례도 있습니다.

"강, 항구, 공공 도로는 모두의 공동 소유이므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도 자신이 태어난 땅에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민법에 새겨진 중세 법전의 DNA

또 다른 사례는 1800년까지 스페인 영토였다가 1803년 프랑스로부터 미국이 인수한 루이지애나입니다. 1820년에는 주민들이 이를 규율하는 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에테 파르티다스의 영어 번역 비용이 승인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루이지애나 민법 조항 상당수는 이 중세 법전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고 그대로 적용한 결과물로,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13세기 중세 스페인에서 시작된 시에테 파르티다스가 오늘날 미국 법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법률 텍스트 곳곳에 중세 카스티야어 용어와 인용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좋은 제도는 오래 지속되는 법입니다. 설령 그것이 'made in Spain'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러한 유산은 1949년 국회의사당 개축 당시 하원이 공식 인정한 바 있으며, 그때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을 대표하는 23개의 대리석 부조 갤러리가 추가되었고 그중에는 '현명왕' 알폰소 10세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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