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후세인 오바마입니다.
건국 이래 미국의 흑인들은 차별에 시달려 왔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예로 부려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건국 약 300년 만에, 미국의 역사는 크게 바뀌게 됩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되기까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1961년 하와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었고, 어머니는 캔자스 출신 백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슬림이었지만 오바마 본인은 개신교 신자였으며, 1964년 부모가 이혼한 뒤에는 어머니 곁에서 자랐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인류학자가 되어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고, 오바마는 초등학교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습니다.
1971년 하와이로 돌아와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의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2년 뒤에는 컬럼비아 대학교로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뉴욕의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연방 상원의원 신분으로 2008년 대선에 출마하여,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제44대 대통령

민주당 소속 대통령으로서 오바마는 국내 정책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소위 '오바마케어'라 불리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들을 잇달아 추진했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30억 달러 규모의 예산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원주민 등 소수 인종들을 요직에 적극적으로 기용했습니다. 체로키족 출신 인재를 백악관 수석 보좌관으로 임명했고, 히스패닉계 소니아 소토마요르를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하는 등 혁신적인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반면 외교 정책에서는 민주당답게 조화로운 노선을 걸었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중단하겠다"며 내정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란·쿠바와의 관계 회복도 추진했지만 국내 여론의 지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주둔군을 증파하기도 했으나, 재임 중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핵보유국으로서 미국은 행동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선언했고, 첫 임기 중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버락 오바마에 대한 평가
오바마는 국내 정치를 풍요롭게 만들고, 소수 인종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미국 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강한 미국'을 지향하던 세력들의 반발은 강했고, 이민 문제 등을 둘러싼 보수 진영의 반대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 정치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