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초기에 추수감사절은 아직 전국적인 명절이 아니었습니다.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주로 기념되던 지역적 풍습으로 남아 있었죠. 그러나 전투가 각지에서 벌어지면서 고향을 떠난 병사들은 익숙한 위안을 갈구했고,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고향에서 지내오던 명절 풍습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고향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처참한 전쟁 속에서 사기를 북돋우며, 잠시나마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전쟁 막바지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전국 추수감사절을 선포하면서, 이 명절은 미국 전역이 함께 기념하는 국가적 축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863년, 메릴랜드의 전화(戰火) 속 추수감사절
남북전쟁 기간 가장 주목할 만한 추수감사절 행사 중 하나는 1863년, 전쟁으로 유린당한 메릴랜드의 혼란 한복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여름 내내 북군이 거둔 연이은 승리 직후인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전국 추수감사절로 지정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이 해 추수감사절은 게티즈버그와 빅스버그에서의 북군 승리 덕분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올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피터즈버그 전선에서 지낸 1864년 추수감사절
다음 해인 1864년 10월에는 북군 장교 조슈아 로렌스 체임벌린(Joshua Lawrence Chamberlain)이 남긴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는 리치먼드 바로 동쪽에 위치한 피터즈버그에서, 남북전쟁에서 가장 혹독했던 전투와 공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제단과 십자가를 차려 예배를 올리며 추수감사절을 지냈다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