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발발한 미국 남북전쟁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제 문제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몇 달간의 정치적 위기를 거치며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세 가지 사건을 살펴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당선 (1860년 11월 6일)
노예제 확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운 공화당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하며 제16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선거는 사실상 네 명의 후보가 각자 다른 진영을 대표하는 양상이었습니다. 북부 민주당의 스티븐 A. 더글러스,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 민주당의 존 C. 브레킨리지, 그리고 연방 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면서도 신규 영토로의 노예제 확장에는 반대했던 헌법연합당의 존 벨이 그 상대였습니다.
링컨은 북부 지역의 표를 기반으로 승리했지만, 남부에서는 그의 당선이 곧 '노예제 존폐의 위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이 남부 분리 독립 움직임에 불을 지핀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연방 탈퇴 위기 (1860년 12월 ~ 1861년 2월)
링컨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남부 주들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1860년 12월 20일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졌고, 이어서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가 잇달아 탈퇴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이 여섯 개 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아메리카 연합국(남부연맹)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사실상 별도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연방의 분열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섬터 요새 공격 (1861년 4월 12일~13일)
전쟁의 실질적인 시작을 알린 것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항에 있던 섬터 요새 공격이었습니다. 섬터 요새는 연방(북군)이 장악하고 있던 요새로, 탈퇴한 남부 주들의 한복판에 남아 있던 연방의 마지막 거점이었습니다.
1861년 4월 12일 새벽, 남부군은 요새에 대한 포격을 개시했고, 하루 이틀에 걸친 격렬한 폭격 끝에 수비군은 4월 13일 남부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전사자는 거의 없었지만,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서막을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맺음말
링컨의 당선, 남부 7개 주의 탈퇴, 그리고 섬터 요새 포격. 이 세 가지 사건은 각각 독립된 사건처럼 보이지만, 모두 '노예제와 연방의 운명'이라는 하나의 갈등축 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남북전쟁은 4년간 이어지며 약 6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미국의 노예제 폐지와 국가 재통합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