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미국 남북전쟁 이전, 정부가 시도한 주요 타협과 그 한계

미국 남북전쟁 전 정부의 주요 타협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하기 전까지 연방 정부는 노예제 문제를 둘러싼 남북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들은 갈등을 잠시 늦출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양측의 대립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1820년 미주리 타협

  • 미주리를 노예주로, 메인을 자유주로 연방에 가입시켜 상원 내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 루이지애나 매입 지역에 북위 36도 30분선을 경계로 설정했습니다.
  • 미주리를 제외한 해당 선 이북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했습니다.
  • 36도 30분선 이남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계속 허용했습니다.

1850년 타협

  •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연방에 가입시켰습니다.
  • 뉴멕시코와 유타 준주를 자유주 또는 노예주 여부를 정하지 않은 채 조직했습니다(인민주권 원칙 적용).
  •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노예 거래를 폐지했습니다.
  • 도망노예법을 강화하여 북부 주민들마저 노예 소유주의 권익 보호에 협조하도록 했습니다.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법

  • 1820년 미주리 타협을 폐지했습니다.
  •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주민들이 직접 자유주 또는 노예주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인민주권).
  • 그 결과 '피바다 캔자스(Bleeding Kansas)'라 불리는 격렬한 폭력 사태가 캔자스에서 벌어졌습니다.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

  • 연방 대법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며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 이 판결은 노예제 확산을 합법화하는 것으로 비춰져 남북 간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1859년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 노예제 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무기를 무장시켜 노예 반란을 일으키려 시도한 사건입니다.
  • 습격은 실패로 끝났지만, 남북 양측 모두에게 충격을 주며 갈등을 한층 더 악화시켰습니다.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당선

  • 노예제 확산에 반대하는 링컨의 당선은 남부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마지막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남부 각 주는 연방에서 탈퇴하여 아메리카 연합국(남부연합)을 결성했습니다.
  • 이는 곧 1861년 남북전쟁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반복적인 타협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 심화되었고,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인 남북전쟁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