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를 영국군의 승리로 기억하지만, 실제 역사는 훨씬 복잡합니다. 1775년 6월 17일 미국 독립 전쟁 초기, 보스턴 공방전 중 매사추세츠 찰스타운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진지를 점령했지만, 결코 값싸게 얻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미군
전쟁 경험이 부족했던 식민지 민병대는 브리즈 힐에 구축한 방어선에서 윌리엄 하우 장군이 이끄는 영국 정규군의 공격을 두 차례나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눈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발포하지 마라"라는 유명한 지시처럼, 미군은 제한된 탄약을 아껴 가며 근접 거리에서 일제 사격을 퍼부으며 영국군 선두 부대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영국군이 치른 막대한 대가
세 번째 총공격 끝에야 진지를 확보한 영국군의 피해는 처참했습니다. 사망 226명, 부상 약 800명으로 총 1,000명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군이 입은 가장 큰 단일 전투 손실이었습니다. 반면 미군의 사상자는 그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탄약 부족, 어쩔 수 없는 후퇴
미군이 진지를 내준 결정적인 이유는 적의 공세가 아니라 탄약 고갈이었습니다. 화력이 바닥난 민병대는 백병전의 위험을 피해 질서 있게 후퇴했고, 그 결과 형식적으로는 영국군의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의 진짜 의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식민지 민병대가 세계 최강의 정규군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벙커힐 전투를 '피러스의 승리', 즉 이길수록 잃는 것이 더 많은 비극적 승리로 평가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