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관람했다. 이 글을 쓰는 2019년 6월 기준으로 아마존 프라임에서 시청할 수 있었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 봐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영화 뷰티풀 마인드 감상 후기
- 존 내쉬의 실제 삶
- 존 내쉬의 삶을 돌아보며
영화 뷰티풀 마인드 감상 후기

존 내쉬의 삶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대한 감상부터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시작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다 본 뒤 아마존이 추천해 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가 나치 독일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뷰티풀 마인드' 역시 비슷한 줄거리, 즉 천재 수학자가 펜타곤의 의뢰를 받아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고 핵폭탄의 위치를 알아내는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되는데,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존 내쉬는 펜타곤의 의뢰를 받은 적이 없었고, 그가 목격한 사건들은 모두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만들어낸 환각과 환상이었다.
물론 감독의 탁월한 연출 덕분도 있겠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을 먼저 본 탓에 같은 부류의 이야기라고 짐작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전개였다. 영화가 반쯤 진행될 무렵 "이 영화는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은 계속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실제로 존 내쉬는 군 관련 연구소에서 일했고 암호 해독 전문가처럼 보이는 활약을 했기 때문에, 펜타곤의 의뢰를 받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펜타곤 요원들이 소련 스파이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흐름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명백히 이상하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사실은 모두 존 내쉬의 망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니, 사실 보는 도중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지만,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영화 속 존 내쉬는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실제로도 존 내쉬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진짜 있었던 일이다.
존 내쉬의 실제 삶

존 내쉬는 1928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 어머니는 교사로 흔히 말하는 중산층 가정의 자녀였다. 17세에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자공학을, 이후에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수학에서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프린스턴 대학 입학 추천서에는 단 한마디, "그는 수학의 천재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즉 존 내쉬는 수학 분야에서 두 말 할 나위 없는 천재였던 것이다.
프린스턴에 다니는 동안 그는 '게임 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게임 이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경제학을 비롯해 온갖 학문에 응용될 수 있는 이론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내시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존 내쉬 본인은 게임 이론보다 리만 가설 연구에 더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그렇다, 그 악명 높은 리만 가설이다.
예전에 NHK에서 방영한 리만 가설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세계사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많이 접해 온 나조차 놀랐다. 세계 최고 권위의 수학자들이 리만 가설에 도전했다가 정신까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소개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존 내쉬였던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존 내쉬는 조현병을 앓게 되었다. 아마도 수학이라는 늪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든 탓이리라. 존 내쉬 스스로는 자신의 병을 연구에 대한 과도한 압박과 더 큰 인정을 받지 못한 데 따른 좌절 탓으로 돌렸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혔다고 전해진다.
영화와 다른 점도 있다. 현실에서는 발병 후 아내 앨리샤와 이혼했고, 앨리샤 역시 이후 다른 사람과 재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앨리샤는 이혼 후에도 존 내쉬 곁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1957년에 첫 번째 결혼을 하고, 2001년에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인생을 함께한 형태의 재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앨리샤와 이혼하기 직전인 1960년경부터 존 내쉬의 조현병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프린스턴 캠퍼스를 배회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며 '파인 홀의 유령(Fine Hall Phantom)'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963년 앨리샤와의 이혼이 확정되자 증세는 더욱 심해졌고, 그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약물 치료를 받았다. 1970년 앨리샤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 뒤에야 호전의 기미가 보였고, 1978년에는 존 폰 노이만 이론상을 수상했다.
이 무렵부터 그의 증세는 소위 관해(緩解) 상태에 접어들었고, 1994년에는 노벨 경제학상, 1999년에는 스틸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오랜 수학 연구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아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아벨상을 받은 직후 그는 앨리샤와 함께 탄 택시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존 내쉬는 86세, 앨리샤는 82세였다.
존 내쉬의 삶을 돌아보며
정말 흥미로운 점은, 존 내쉬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과 과도한 인정 욕구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명예와 명성은 원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노력의 결과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