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발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물었던 나라는 바로 독일이었습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1914년 6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건이었지만, 연합국은 독일이 이 갈등을 부추기고 확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독일에게 전쟁 책임이 귀속된 이유
독일이 전쟁의 주범으로 지목된 데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우선 독일은 전쟁 이전 수십 년간 군사주의와 팽창주의 노선을 강화해 왔습니다. 특히 1900년대 초반 해군력을 대규모로 증강하며 영국과의 군비 경쟁을 심화시켰고, 모로코 위기 등 유럽 내 긴장 상황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낼 때 독일이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한 이른바 '공백 수표(blank cheque)'는 지역 분쟁이 유럽 전역의 대전쟁으로 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울러 독일은 전쟁 초기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베르사유 조약과 '전쟁 책임 조항'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는 제231조에 해당하는 이른바 '전쟁 책임 조항(war guilt clause)'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조항은 독일과 그 동맹국이 침략으로 인해 전쟁과 그로 인한 모든 손실과 피해를 초래했다고 규정하며, 독일에 거액의 배상금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이러한 책임론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와 국토 파괴에 대한 배상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서부 전선에서 수백만 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프랑스 북부 지역은 폐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역사학의 재해석
다만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전쟁 책임이 단일 국가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세르비아 침공 결정, 러시아의 총동원령, 각국을 얽어맨 동맹 체계와 군사 계획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격적 외교와 군사적 선택이 전쟁의 발발과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