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11월 15일 브라질 공화국 선포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브라질의 공화국 선포는 1889년 11월 15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은 브라질에서 공화정이 선포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공휴일입니다. 브라질의 초대 대통령은 데오도루 다 폰세카(Deodoro da Fonseca) 원수였습니다.

군주제에서 공화제로의 전환과 함께 페드루 2세(Dom Pedro II)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브라질 최초의 대통령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공화국 선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당시 브라질의 군주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일련의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먼저 종교 문제가 있었습니다. 황제가 교황 칙서에 반대하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극도로 가톨릭적인 사회에서 두 명의 주교가 체포되는 결과로 끝났습니다.

그다음은 군부 문제였습니다. 군인들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으며, 사회로부터 더 많은 인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육군 내부는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과, 나라의 근대화를 위해서라도 공화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예제 폐지 문제는 대지주들이 더 이상 군주제를 지지하지 않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상 없이 이루어진 노예 해방은 대지주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11월 15일 새벽, 한 무리의 군인들이 군주제를 종식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베자민 콘스탄(Benjamin Constant) 중령이 주도하고, 민간인 퀸티누 보카이우바(Quintino Bocaiuva)의 도움을 받아 육군 일부가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 많은 군인 출신의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선택된 인물은 파라과이 전쟁의 참전 용사이자 병사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던 데오도루 다 폰세카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데오도루 원수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사실상 부축을 받아 육군부로 옮겨졌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군주제 전체가 아니라 우루프레투 자작(Vizconde de Ouro Preto) 내각만을 전복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11월 15일 브라질 공화국 선포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황실은 페트로폴리스(Petrópolis)에 머무른 채 황제가 사태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1월 15일 밤, 황제는 공화정이 선포되었다는 통보를 공식적으로 전달받았습니다.

내전을 피하기 위해 페드루 2세 황제는 군주제를 지지하는 어떠한 군 사령관도 소집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황제 측의 적대적 반응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군부는 황실을 브라질에서 추방하기로 합니다. 이에 따라 페드루 2세 황제, 테레자 크리스티나 황후,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손주들은 17일 새벽 망명의 배에 올랐습니다.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국민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황제와 그의 가족이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다음 날에야 비로소였습니다.

이후 데오도루 원수는 브라질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플로리아누 페이소투(Floriano Peixoto) 원수가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공화국 선포 기념일의 행사

공화국 선포 기념 행사는 공화정 시대 내내 매우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특히 전성기는 군사 정권 시기(1964~1985)였으며, 당시에는 데오도루 원수, 카시아스 공작(Duque de Caxias), 베자민 콘스탄, 플로리아누 원수 등 군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렸습니다.

1980년대에는 공휴일이자 국민 기념일인 11월 15일에 맞춰 각종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공화국 선포 찬가

데오도루 원수의 임시 정부가 초기에 취한 조치 중 하나는 브라질의 애국가와 국기를 교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기는 군주제 시절의 색과 형태를 대체로 유지했으며, 사실상 제국 문장만 제거하고 별이 빛나는 하늘과 실증주의 좌우명인 "질서와 진보(Ordem e Progresso)"로 대체했습니다.

새 찬가 작곡을 위해 1890년 1월 공모전이 열렸고, 작곡가 레오폴두 미게즈(Leopoldo Miguez, 1850~1902)와 시인 메데이루스 이 알부케르키(Medeiros e Albuquerque, 1867~1934)가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군부는 기존 브라질 국가의 멜로디를 더 선호했습니다. 이에 데오도루 다 폰세카 대통령은 새 작품을 '공화국 선포 찬가'로 지정하여 사용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빛의 장막이 펼쳐지기를
이 드넓은 하늘 아래
과거가 저 반역의 구석을
가장 비열한 수치로부터 구원하길!
희망과 새로운 미래를 노래하는
영광의 찬가가 되기를!
승리의 환상으로 싸움을 위해 일어선 이들을
무장시키기를!

[후렴]

자유여! 자유여!
날개를 우리 위로 펼쳐다오!
폭풍 같은 싸움들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들려다오!

이 고귀한 나라에 노예가 존재했던 적이
우리는 믿어지지 않는다...
오늘 새벽의 진홍빛 여명은
적대적인 폭군이 아닌 형제를 마주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미래를 향해
하나 되어 나아가리라,
순수하게 빛나는 우리의 웅장한 깃발을,
조국의 제단 위에 영원히 높이 들고!

[후렴]

용감한 가슴들이 필요하다면
우리 깃발 위에 피가 흐르게 하라,
영웅 티라덴치스(Tiradentes)의 살아 있는 피가
이 대담한 깃발에 세례를 내렸으니!
평화의 사자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사랑이 곧 우리의 힘이자 권능이다
그러나 전쟁의 최후의 순간에도
싸우고 승리하는 우리를 보라!

[후렴]

이피랑가(Ipiranga)의 그 외침은
장엄한 신앙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브라질은 이미 해방되어 태어났다,
왕가의 자줏빛 아래 우뚝 서서.
일어나라, 브라질인들이여, 전진하라!
푸른 녹색을 향해 열매를 거두자!
우리 나라가 승리하기를,
자유로운 형제들의 자유로운 땅이기를!

공화국 선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최근 역사학자들은 11월 15일을 단순한 혁명이 아닌 쿠데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중의 지지가 없었고, 군주제가 무력으로 전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최초의 헌법(1891년)은 유권자가 군주제와 공화제 중 하나를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국민투표는 무려 104년 후인 1993년에야 실시되었습니다.

또한 유명 축구 클럽인 플라멩구(Clube de Regatas do Flamengo)가 1895년 11월 1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창단되면서, 이 날짜는 언제나 공화국 선포 기념일과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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