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페르난도 콜로르: 브라질 제32대 대통령의 흥망성쇠

페르난도 콜로르는 누구인가?

페르난도 콜로르(Fernando Collor)는 브라질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브라질 공화국 제32대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군사 독재 이후 직접 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브라질 대통령이었지만,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해 탄핵된 비운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2007년에는 알라고아스주 연방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14년 같은 자리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습니다.

콜로르의 생애

정치인 아르논 아폰수 지 파리아스 멜루와 레다 콜로르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난도 아폰수 콜로르 지 멜루는 1949년 8월 12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학업을 마친 뒤, 알라고아스 연방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브라질리아 대학교에서도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언론 분야에서도 활약하여 리우데자네이루의 조르날 두 브라지우(Jornal do Brasil)에서 근무했고, 이후 가제타 지 알라고아스(Gazeta de Alagoas)의 발행인으로 일했습니다.

콜로르의 정치 경력은 알라고아스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세이오 시장(1979~1982)으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연방 하원의원(1982~1987), 그리고 알라고아스주 주지사(1987~1989)를 거쳤습니다.

주지사 임기를 완수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군부 독재 이후 최초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 번 결혼했습니다. 1975년 셀리 엘리자베트 줄리아 몬테이루 지 카발류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고, 1984년에는 훗날 영부인이 되는 로자네 브란당 말타와 재혼했습니다. 2006년에는 카롤리나 메데이루스와 세 번째 결혼을 하여 두 딸을 얻었습니다.

모두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은 1980년 옛 애인 주시네이디 브라스 다 실바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콜로르 정부의 등장

1964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21년간 이어진 브라질 군사 독재 기간 동안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1989년, 브라질 국민들은 마침내 대통령 선거에서 직접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콜로르는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 척결, 특히 고액 연봉을 받던 공무원 '마라자(marajás)' 소탕을 내걸었습니다. 이러한 공약 덕분에 그는 '마라자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그는 위기론을 비판하며 "위기 따위 말하지 말고 일해라"라는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치열한 선거전 끝에 국민재건당(PRN) 소속의 페르난도 콜로르는 3,500만 표를 획득하며, 3,100만 표를 얻은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그의 취임식은 1990년 3월 15일 거행되었습니다.

콜로르 플랜(Collor Plan)

취임 직후 콜로르는 '국가재건계획'(콜로르 1기·2기 플랜으로 나뉨)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새 화폐인 크루제이루 노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예금을 동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룻밤 사이 개인과 기업 모두 은행 계좌에서 극소량의 현금만 인출할 수 있게 되었고, 정부는 5만 크루제이루(약 6천 헤알)까지만 인출을 허용했습니다.

콜로르 플랜으로 알려진 이 경제 조치는 결과적으로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경제 불황을 초래했습니다. 물가는 폭등하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으며 실업률이 급증했습니다.

예금 동결 외에도 콜로르 플랜은 신자유주의 원칙의 영향을 받아 브라질 시장 개방, 국영기업 민영화, 공무원 감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부정부패 스캔들

권력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선거 자금 관리책이었던 파울루 세자르 파리아스(PC 파리아스로 잘 알려짐)가 연루된 부패 의혹이 폭로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친형 페드루 콜로르 지 멜루(1952~1994)가 페르난도 콜로르와 PC 파리아스가 공금을 횡령한 실태를 언론에 폭로하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탄핵 과정

스캔들이 커지면서 1992년 6월 25일, 콜로르 대통령의 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국회조사위원회(CPI)가 열렸습니다.

CPI는 콜로르와 그의 가족이 다양한 형태의 부패를 통해 막대한 공공 자금을 유용한 이른바 'PC 파리아스 스캔들'에 연루되었음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콜로르의 낮은 지지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축출되기 직전인 1992년 6월 20일, 콜로르는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집 창문에 브라질 국기 색깔의 천을 걸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은 창문에 검은 천을 걸고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과 애도를 표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콜로르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천 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섰고, 얼굴에 녹색과 노란색을 칠하며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습니다. 이 운동은 '칠해진 얼굴(Caras Pintadas)'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탄핵 심판

거리의 여론과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이 깊어지자, 하원은 441표 대 38표로 콜로르 탄핵 절차 개시를 승인했습니다.

투표권은 상원으로 넘어갔지만, 콜로르는 정치적 권리 박탈을 우려하여 상원이 책임범죄로 그를 유죄 판결하기 직전인 1992년 12월 29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권리가 박탈되어 8년간 피선거권을 잃었습니다.

이후 1995년 콜로르는 연방대법원(STF)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는 'PC 파리아스 스캔들' 관련 수뢰 혐의, 허위 이념 범죄, 그리고 공직을 이용한 횡령 혐의를 벗어났습니다.

탄핵 이후 콜로르와 영부인 로자네는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습니다. 대통령직은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에게 넘어갔습니다.

결국 콜로르 정부는 수차례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이것이 그의 축출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알라고아스주에서는 그의 정치적 명망이 여전히 높았고, 콜로르는 두 차례나 해당 주의 연방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들

  • 2016년 전 대통령 질마 루세프가 직무비위 혐의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때, 콜로르 지 멜루는 상원의원으로서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 PC 파리아스는 1996년 6월 23일 알라고아스주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이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前 영부인 로자네 콜로르 지 멜루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전 대통령과의 생활을 회상하며 연금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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