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직업'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생 정식으로 취업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직장 생활과는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합스부르크 황가의 공주로 태어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와 여대작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최고 수준의 사치와 특권 속에서 자랐으며, 경제 활동이나 고용될 필요성 자체가 전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왕비가 되다
1770년, 14세의 나이에 그녀는 프랑스 왕태자 루이 오귀스트(훗날의 루이 16세)와 결혼했습니다. 이후 1774년 남편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왕비(Queen consort)가 되었습니다. 왕비 역시 엄밀히 따지면 하나의 '직위'이긴 하지만, 급여를 받는 고용 형태의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궁정에서 상징적·외교적으로 왕가를 대표하는 것이었죠.
특권층의 삶,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이 극심한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던 시기에 과도한 사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대중의 분노를 샀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1793년 처형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황가의 공주로 태어나 왕비가 되기까지, 평생 어떠한 형태의 직업도 갖지 못했거나 가질 필요가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출생이 곧 신분과 운명을 결정하던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