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세운 최초의 도시는 바로 산 미구엘 데 탕가라라(San Miguel de Tangarará)였습니다. 1532년 7월 15일, 술라나(Sullana) 지방의 현재 마르카벨리카(Marcavelica) 지역, 피우라 강 우안에 캐롭나무가 자라던 시골 마을에 자리 잡았습니다. 카하마르카(Cajamarca)로 향하던 정복자들이 '기독교인의 도시'를 세우려는 염원을 이곳에서 실현한 것입니다.
이곳은 탈란(Tallán) 어로 '물고기가 서식하는 늪'이라는 뜻을 지닌, 추장(cacique) 탕가르 아라크(Tangar Arac)가 다스리던 땅이었습니다. 최초의 기독교 교회가 이곳에 세워졌고, 발베르데(Valverde) 신부가 첫 미사를 집전하며 전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블라스 데 아티엔사(Blas de Atienza)가 초대 시장으로 임명되었고, 알베르토 나바로(Alberto Navarro)가 회계사, 알폰소 리켈메(Alfonso Riquelme)가 재무관을 맡으면서 페루 최초의 지방 자치 단체가 구성되었습니다. (참고로 산 미구엘 델 비야르(San Miguel del Villar), 즉 오늘날의 피우라는 한 달 뒤인 1532년 8월 15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역사가 미구엘 세미나리오 오헤다(Miguel Seminario Ojeda, 『술라나의 역사』)가 밝힌 내용이며, 연대기 작가 페드로 시에사 데 레온(Pedro Cieza de León, 『페루 연대기』)과 건국을 직접 목격한 후안 데 아르세(Juan de Arce)는 이곳을 "먹거리가 풍족한 좋은 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역사가 레이날도 모야 에스피노사(Reynaldo Moya Espinoza), 후안 호세 베가(Juan José Vega), 미구엘 아르투로 세미나리오 오헤다(Miguel Arturo Seminario Ojeda) 등이 이 견해를 지지하지만, 도시 건설 당시에는 항상 작성되지 않았던 '건국 문서'가 없어 날짜의 부정확성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확인되었고, 카를로스 5세 황제가 1537년 12월 7일 문장(紋章)을 하사하며 이곳을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유럽 도시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 사실은 호세 안토니오 델 부스토(José Antonio del Busto)의 『페루 통사(General History of Peru)』에서도 확증되었으며, 2005년 7월 15일 페루 공화국 의회가 발행한 공로 증서를 통해 공식 비준되었습니다.
같은 해 국립문화원은 탕가라라를 국가 문화유산으로 선언했고, 같은 해 4월에는 피우라 지방 정부가 지역 행정 결의안 제248-2005호에 따라 이 도시를 "스페인이 남태평양에서 건설한 최초의 도시이자 초문화(트랜스컬처)의 수도"로 선포했습니다.
이 도시의 건국은 발견과 정복에 관한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정복자 피사로의 조카로 정복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건국 현장에 함께했던 페드로 피사로(Pedro Pizarro)의 원고를 바탕으로 한 페루 관련 서적에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1982년 6월 3일 R.M. 제475-82-ED호에 따라 페루의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피우라 지역의 역사 지구이자 이 지역 8대 관광 명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수많은 칭호와 문서, 역사적 증언에도 불구하고 탕가라라는 지방 자치체로 승격되려던 열망이 좌절된 채 오랜 세월 방치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흙벽돌(어도비)로 담을 쌓고 짚과 진흙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들이 남아 있습니다. '두 문화의 만남(Encounter of Two Cultures)'이라 불리는 현대적인 궁정 광장, 건국 400주년을 기념해 1932년에 세워진 중앙의 오벨리스크, 그리고 486년 전 건국 당시 피사로가 사용한 십자가의 복제품이 이 마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로 쌀과 바나나 생산 등 농업을 주요 생계 수단으로 삼는 탕가라라는 여전히 인프라와 기본 서비스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광객과 방문객이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과 무수한 전설들의 향연을 온전히 감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역사로 가득한 이 마을이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역사유산으로 계속 성장하고, 오늘날 주민들에게 자긍심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수준의 당국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8월 24일 금요일에는 탕가라라를 스페인이 남태평양에 세운 최초의 도시로서 보호하기 위한 공청회가 술라나 지방자치단체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주최로 열렸습니다.
결국 페루가 자신의 과거를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막대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탕가라라와 같은 도시가 망각과 방임 속에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호세 바르가스 시푸엔테스(José Vargas Cifuente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