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이후 1865년부터 1877년까지 남부 주는 재건이라는 연방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재건의 주요 목표는 남부를 재건하고, 새로 해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완전한 시민으로 통합하고, 남부 연합 주들을 연방으로 다시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가 구현되었습니다.
1. 대통령 재건(1865-1867):
- 사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은 연방에 충성을 맹세한 대부분의 남부 연합 관료와 지지자들을 사면하는 사면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10% 계획: 존슨의 재건 계획은 각 남부 주가 헌법 제정 회의를 개최하도록 요구했는데, 여기서 1860년 유권자의 최소 10%는 연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노예 제도를 폐지한 수정헌법 제13조를 비준해야 했습니다.
- 재건법: 존슨의 관대한 접근 방식에 반대하는 의회의 급진적인 공화당원들은 1867년에 남부를 연방 장군들이 감독하는 군사 구역으로 나누는 일련의 재건법을 제정했습니다.
2. 의회 재건(1867-1877):
- 군사 규칙: 연방법을 집행하고 남부 주의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군사 총독이 임명되었습니다.
- 정치 재건: 재건법은 남부 주들이 새로운 헌법 협약을 개최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수정헌법 제14조(시민권 보장)와 수정헌법 제15조(인종에 따른 투표에서 차별을 금지함)를 비준하도록 요구했습니다.
- 카펫 배거 및 스칼라와그: 종종 "카펫 배거"라고 불리는 재건 기간 동안 남부로 이주한 북부인과 "스칼라와그"로 알려진 재건을 지지한 남부 백인은 이 기간 동안 발생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 사용:
- 가정 규칙: 남부 백인들은 재건 이후 등장한 공화당이 주도하는 정부로부터 정치적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 백인 우월주의: 많은 남부 주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인종 차별을 유지하여 정치적 참여와 평등한 기회에서 효과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 1877년의 타협: 1876년 대통령 선거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연합군이 남부에서 철수하여 사실상 재건이 끝나고 남부 주들이 자치 정부로 복귀하는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