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주의: 전간기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 노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미국 외교 정책을 지배한 흐름은 단연 고립주의(Isolationism)였습니다. 고립주의는 외국 세력과의 영구적인 동맹 체결을 피하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려는 미국의 전통적 외교 방침을 이어받은 것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약 20년간(1918~1939) 미국 외교의 큰 틀을 형성했습니다.
고립주의가 등장한 배경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 전후 환멸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인명 손실과 막대한 비용을 치렀음에도 유럽의 질서는 안정되지 않았고, 이는 '전쟁은 유럽의 싸움'이라는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 유럽 분쟁에 대한 경계: 또다시 유럽 열강 간의 충돌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 안보에 대한 자신감: 양쪽이 대양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 덕분에 미국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립주의를 실현한 대표적 정책들
미국 정부는 고립주의 노선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 국제연맹 불가입: 제1차 세계대전 후 평화와 안보를 위해 설립된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직접 창설을 주도했음에도, 상원이 가입 조약을 비준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연맹 밖에 머물렀습니다.
- 중립법(Neutrality Acts) 통과: 1930년대에 걸쳐 일련의 중립법을 제정해 교전국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하고, 미국 시민의 교전국 선박 승선을 제한했습니다. 이는 전쟁에 휘말릴 구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였습니다.
- 소련 비승인 정책: 소련을 미국적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1933년 공식 승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소비에트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외교 정책의 전환: 나치 독일의 부상
그러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에 이르러 미국의 외교 정책은 급격히 변화합니다.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처음에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통해 연합국에 물자와 장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했고, 마침내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하며 고립주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