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드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이클 대회입니다. 매년 7월에 약 3주간 개최되며, 전통적으로 파리 샹젤리제 대로에서 막을 내립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역사는 20세기 프랑스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이 신화적인 대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첫 대회는 1903년에 열렸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시기가 있었고 도핑 논란 등 시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도로변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여름의 필수 이벤트인 투르 드 프랑스를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첫 자전거 경주부터 첫 투르 드 프랑스까지
최초의 자전거 경주는 1868년 5월 파리 생클루 공원(Parc de Saint-Cloud)에서 1,200m 거리로 열렸습니다. 다음 해에는 거리가 늘어나 123km가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보르도-파리'처럼 400km 안팎의 장거리 경주가 열렸습니다. 당시 이러한 경주들은 신문사 '벨로(Vélo)'와 '라우토(l'Auto)' 두 곳이 주관했습니다. 판매 부수를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라우토 기자 조 르페브르(Géo Lefèvre)는 프랑스 전역을 도는 구간별 로드 레이스, 즉 "역대 최대의 사이클 행사"를 구상했습니다. 초기 2,400km였던 코스는 1911년 5,300km까지 늘어났고, 현재는 다시 약 3,400km 수준입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상사 앙리 데그랑주(Henri Desgrange)에게 제안했습니다. 데그랑주는 열렬한 사이클 선수 출신으로 1893년 삼륜차 챔피언이었으며, 1900년 신문 라우토를 창간했고, 1902년 파리-마르세유 경기를 주최했으며, 파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에 666m 사이클 트랙을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데그랑주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1902년 11월 투르 드 프랑스가 탄생했습니다!
1903년 7월 1일부터 19일까지 60명의 선수들이 빌뇌브생조르 교외에서 출발해 6개 구간을 달렸습니다. 첫 목표지는 리옹(467km)이었고, 이후 마르세유, 툴루즈, 보르도, 낭트 등을 거쳤습니다. 파크 데 프랭스에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는 겨우 21명뿐이었고, 우승자는 2,428km를 달린 프랑스의 모리스 가랭(Maurice Garin)이었습니다.
1905년에야 산악 구간이 투르 드 프랑스 코스에 추가되었고, 첫 '산악 구간'은 발롱달자스(Ballon d'Alsace) 등반이었습니다. 1910년에는 경기에 좀 더 재미를 더하기 위해 데그랑주의 직원이 피레네산맥 통과를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상사는 "피레네를 넘으라고? 미쳤군! 양치기 길 같은 데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지나가게 하다니... 선수들이 나를 욕하지 않겠나!"라고 답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몇몇 선수들이 답사를 나섰지만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리 없다"며 탄식했습니다. 1909년 투르에서 150명이 출발했지만, 1910년에는 110명만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알프스산맥은 1911년 코스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로 투르 드 프랑스는 전쟁으로 중단된 시기에도 불구하고 줄곧 많은 관중을 끌어모았습니다. 2002년에는 '프로방스의 거인'이라 불리는 몽방투(Mont Ventoux) 등반 구간에서 35도의 폭염 속에서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로변에 모였습니다.
투르 역사상 신화적인 저지들
투르 우승자의 상징인 옐로 저지(yellow jersey)는 1919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그해 대회에서 펠리시에 형제가 5번째 구간에서 기권하자 외젠 크리스토프(Eugène Christophe)가 선두에 섰지만, 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그를 눈에 띄게 하기 위해 별개의 색깔 저지를 입히기로 했고, 주최 측은 신문 라우토를 기리기 위해 노란색을 선택했습니다. 관례상, 이전 착용자가 사고로 기권한 경우 하루 동안은 저지를 입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954년 대회에서 종합 선두 루이종 보베(Louison Bobet)가 생브리외-브레스트 구간 출발 때 옐로 저지를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전날 밤 여동생에게 선물해 버린 것입니다! 주최 측은 "옐로 저지 없이 선수들을 출발시킬 수는 없다"며 발칵 뒤집혔습니다.
보베의 트레이너 레몽 르 베르(Raymond Le Bert)는 자신 집에 저지가 하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저지를 입으려니 몸에 딱 붙어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저지가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트레이너는 시내에서 권투 체육관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헤비급 선수 한 명을 급히 불러 저지를 "늘려" 달라고 부탁했고, 저지를 비틀고 구부리느라 결국 바느질이 풀릴 정도가 되어서야 보베는 저지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될 수 있었고, 루이종 보베는 옐로 저지를 입고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 하나의 구분 저지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아, 투르 50주년을 맞아 1953년 최고 스프린터에게 주는 '그린 저지(green jersey)'가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화이트 저지(white jersey)'는 1970년에 만들어져 종합 순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25세 미만 신인 선수에게 수여됩니다. 마지막으로 1975년에야 최고 등반가가 처음으로 '흰 바탕에 빨간 물방울 무늬 저지', 이른바 폭탄 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몇 가지 일화
투르 드 프랑스는 연례 필수 행사가 되었지만, 1905년에는 아예 개최되지 못할 뻔했습니다. 실제로 1904년 대회는 일부 관중이 선수들을 공격하고 도로에 못을 뿌린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큰 사고로는 1913년 추락해 자전거가 부서진 외젠 크리스토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수리점을 찾기 위해 15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앙리 앙글라드(Henry Anglade)는 1960년 투르에서 로제 리비에르(Roger Rivière)의 심각한 추락을 미리 예감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1966년에야 도핑 방지법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67년 7월 몽방투 등반 중 더위와 암페타민 복용으로 톰 심슨(Tom Simpson)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1995년에는 이탈리아의 올림픽 챔피언 카사르텔리(Casartelli)가 피레네 포르테다스페 고개(Col du Portet d'Aspet)에서 머리를 가드레일에 세게 부딪혀 사망했습니다. 1983년 옐로 저지 파스칼 시몽(Pascal Simon)은 어깨뼈가 골절된 채로 5일을 더 페달을 밟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라샤펠 언덕(Côte de la Chapelle)에서 기권했습니다. 앙케틸과 함께 5회 우승 기록을 세운 에디 메르크스(Eddy Merckx)는 1974년 대회에서 다른 선수를 응원하는 관중에게 간을 가격당하는 바람에 6번째 우승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덜 참혹한' 이야기로는, 초창기 투르에서 일부 선수들이 긴 구간을 기차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929년 라디오가 처음으로 중계를 시작해 구간별 경기를 따라갈 수 있게 되면서, 다음 날에야 나오는 신문의 가치는 떨어졌고, 1960년 TV 중계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더욱 변했습니다. 1930년에는 선수들보다 먼저 투르 행진 차량(caravan)이 처음으로 코스를 지나갔습니다. 8년의 공백 후 투르는 1947년 라퀴프(L'Équipe) 신문 편집장 자크 고데(Jacques Goddet)의 지휘 아래 재개되었습니다. 같은 해 앙케틸-풀리도르의 대결이 시작되었는데, 파리 시상대에서 우승자 앙케틸은 영원한 2인자에게 "이번 투르에서 내가 땀 흘리게 할 수 있었던 건 너뿐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1964년 5번째 우승을 차지한 앙케틸은 어느 날 자신의 라이벌 풀리도르를 너무 떠올리게 하는 이탈리아 선수 폴리도리(Polidori)를 괴롭힌 적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분위기로 마무리하기 위해, 재능 있으면서도 유쾌해 관중과 주행단을 웃음짓게 했던 선수를 소개합니다. '광대'라 불린 로제 아센포르더(Roger Hassenforder)입니다. 그는 1950년대에 사이클을 시작했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부대를 이탈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종종 컵을 들고 병영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첫 투르 드 프랑스에서 옐로 저지를 차지했고, 수많은 크리테리움(순환전)에서 승리했습니다. 미친 듯이 페달을 밟으면서도 자전거를 거꾸로 타거나, 주행단이 따라올 때까지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수다스러워서 페달을 밟는 만큼 말을 많이 하는 수다쟁이였습니다. 돈을 후하게 쓰고 때로는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그는 1957년 앙케틸과의 언쟁 끝에 6개월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모든 은퇴 선수가 잊지 못할 인물입니다.
2014년 투르 드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의 색과 수국(코른플라워) 아래 101번째 대회를 치렀습니다. 주최 측과 선수들은 이 전쟁에서 희생된 민간인과 군인들을 추모하며, 여전히 전쟁의 참화가 새겨진 풍경 속으로 프랑스의 도로를 누볐습니다.
더 읽을거리
- 『투르 드 프랑스 위대한 역사』, 프랑수아즈 라제, 세르주 라제 지음. 크로니클 출판사, 2012년 10월.
- 『투르 드 프랑스의 놀라운 역사』, 피에르 샤니, 티에리 카즈뇌브 지음. 라마르티니에르, 2011년.
- 『투르 드 프랑스의 역사』, 장프랑수아 미뇽 지음. 디스커버리,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