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함부르크 월드컵에서 동독은 서독(DFB) 대표팀을 1-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는 동독 선수들과 팬들을 향한 국가보안부(슈타지)의 철저한 감시망이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74년 1월 5일, 월드컵 대진 추첨식에서 동독 대표팀이 개최국 서독과 같은 조에 묘이자는 발표가 나오자 회장이 술렁였습니다. 이 경기는 동독 스파이 귄터 기욤(Günter Guillaume)이 빌리 브란트 총리를 몰락시킨 지 6주 후인 6월 22일 함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냉전의 긴장이 역사적인 한 판의 승부를 통해 축구판에까지 스며든 순간이었습니다.
선수와 코치까지 감시한 슈타지
1974년, 동독은 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당국은 선수들이 서방으로 귀순하거나 '계급의 적'에게 유인될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1973년 11월, 슈타지 수장 에리히 미엘케(Erich Mielke)는 대표팀 선수들을 감시하라는 첫 번째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모든 축구 선수는 출전 전에 정치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선수뿐 아니라 코치, 임원, 안마사, 의사, 기자까지 모두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가죽 작전' — 계급의 적을 상대하는 토너먼트
1974년 5월 15일, 미엘케는 동독 축구 선수에 대한 탈출 시도와 정치적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목록인 '가죽 작전(Aktion Leder)'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작전은 6월 12일 시작되어 같은 해 7월 8일 종료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에리히 미엘케의 '가죽 작전' 명령문 발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슈타지는 또한 어떤 시민이 축구 팬으로서 서방에 여행할 수 있는지 직접 규정했습니다. "정치·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적 신뢰성을 입증한, 의식 있는 사회주의 시민만을 선별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아울러 "동독 축구 관광객들은 경기를 관람하러 떠나기 전까지 업무·생활·여가 공간에서 통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절하고 검증된 IM(비밀 정보원)을 활용해야 한다. 우편 검열도 실시한다"는 지침이 함께 내려왔습니다.
당시 선발된 인물 중 한 명인 디터 체츨라프(Dieter Tetzlaff)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더 큰 차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선발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그래서 눈에 띈 것이죠. 차를 운전하게 놔두면 노선에 충실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팬들에게도 명확한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응원석에서 규율을 유지하고 과격 행동을 삼가며, 대회에서 팀을 정치적·도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계급의 적의 도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훈련까지 받았습니다.
위르겐 스파르바서(Jürgen Sparwasser), 서독의 심장을 강타하다
서독의 뼛속까지 서늘하게 만든 한 골 — 위르겐 스파르바서가 동독의 1-0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습니다.
1974년 6월 22일 함부르크 폭스파크슈타디온에서 동독이 서독을 누르리라고 진지하게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르겐 스파르바서가 후반 77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동독을 1-0 승리로 이끌었고, 이 경기는 두 독일이 공식 무대에서 맞붙은 역사상 유일한 매치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패배는 서독의 자신감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누구도 동독의 승리를 진지하게 점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를 상대로 한 승리는 돌아보면 피로스의 승리임이 드러났습니다. 조별리그 1위로 2차 라운드에 오른 동독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네덜란드라는 벽에 부딪혀 결국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패배 끝에 찾아온 우승 — 하나로 뭉친 팀
결국 웃은 쪽은 서독이었습니다. 충격적인 패배 이후 프란츠 베켄바우어 주장이 이끄던 개인주의적인 팀은 힘을 모아 결승까지 진출했고, 1974년 7월 7일 뮌헨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헬무트 쇤(Helmut Schön) 감독의 지휘 아래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반면 스파르바서에게 그 골은 큰 행운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특별한 특권이 따랐으리라 믿었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모든 선수들과 동일한 보너스만 받았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국가보안부의 특별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8년 자르브뤼켄에서 열린 축구경기를 계기로 서독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