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45년 4월, 엘베 강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

15세의 루돌프 슈타머(Ludolf Stamer)는 원래라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망쳤다.

엘베 강변의 요충지, 블레케데

뤼네부르크 동쪽 25km 지점에 자리한 소도시 블레케데(Bleckede)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오랫동안 피해 왔다. 그러나 1945년 4월, 상황은 며칠 만에 급변했다. 엘베 강과 바로 맞닿아 있는 이 도시는 독일군에게나 서방 연합군에게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영국군과 미군은 엘베 강을 건너 소련군과 합류하려 했고, 독일 국방군은 이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으려 했다. 이렇게 해서 북부 독일 엘베 강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충고: 어서 도망쳐라

1945년 4월 당시 루돌프 슈타머는 겨우 15살이었다. 원래라면 그 역시 전선으로 내몰렸을 것이다. "저는 히틀러유겐트 소속이었고,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이제 끝났다'고요." 할아버지의 충고는 명확했다. 어서 도망쳐라. "자전거에 빵 몇 개를 챙겨 넣고 오두막에 숨어 영국군이 올 때까지 버텼습니다."

루돌프 슈타머는 전쟁 마지막 날의 전투가 고향 블레케데까지 번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1945년 4월, 독일 지도부는 엘베 강을 따라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려 했다. 블레케데의 교두보, 즉 페리 선착장은 필사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곳이었다.

"마차 타고 블레케더 모어로 피신했어요"

도라테아 수트비어(Dorathea Soetbeer) 역시 전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현재 80세인 그녀는 회상한다. "우리는 블레케데에 살고 있었는데,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아버지가 우리를 마차에 태워 블레케더 모어(Bleckeder Moor)로 데려갔고, 그곳 벙커 안에 숨었습니다."

한편 블레케데에서는 이른바 '폴크스슈투름(Volkssturm, 국민돌격대)'이 동원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와 참호, 감시 초소가 세워졌다. 약 500명의 독일 병사들이 이 엘베 강변 도시를 사수해야 했다. 4월 20일, 인접 마을 브레체(Breetze)는 진격해 오는 영국군에 항복했다. 이제 블레케데까지 4km밖에 남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고, 레지 뢰버(Resi Röber)와 그녀의 조부모님도 그중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옆집 헛간에 탄약이 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어요. '여기에 불이 붙으면 우리는 전부 죽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블레케더 모어까지 반도 못 왔는데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시트를 꺼내 양손으로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그냥 무사히 지나가고 싶었을 뿐이죠."

양측 합계 약 90명 전사, 180명 포로

4월 21일 새벽 6시, 영국군이 공격을 개시했다. 외곽의 첫 가옥들이 점령되었지만, 영국군의 진격은 더디었다. 독일군이 가옥 안에서 저항했기 때문이다. 전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남은 독일 병사들이 엘베 강 건너편으로 철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블레케데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독일군은 57명이 전사하고 약 18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영국군도 30명이 목숨을 잃고 130명이 부상당했다.

루돌프 슈타머가 숨어 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군이 젊은 독일 병사 넷을 쏘는 걸 목격했어요. 그들은 차 뒤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죠. 저와 비슷한 나이였을 텐데, 어쩌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