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한자동맹 도시 뤼베크를 찾은 것은 40년 전 일입니다. 1980년 11월 13일, 워홀은 뤼베크에서 전시회를 열고 당시 최신작인 '홀스텐터(Holstentor)' 시리즈를 세상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이는 도시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글: 카트린 오토(Katrin Otto)
뉴욕에서 뤼베크까지, 비 오는 가을날의 특별한 여정
1980년 11월 13일은 한자동맹 도시 뤼베크의 흐린 가을날이었습니다. 숙련된 목수이자 가구점 주인인 하이너 리스(Heiner Reese)가 앤디 워홀을 맞으러 함부르크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갈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팝아트의 개척자이자 세계적 아티스트인 워홀이 자신의 전시회 개막을 위해 뉴욕에서 머나먼 독일 북부까지 건너온 것입니다. 그와 동행한 이는 그와 긴밀히 협력하던 미국 사진작가 크리스토퍼 마코스(Christopher Makos)였습니다. 워홀이 독특한 스크린 인쇄 기법으로 가공·재해석한 사진 상당수가 바로 마코스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앤디 워홀 — 광고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팝아트 거장까지
'캠벨 수프 캔'은 앤디 워홀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28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워홀은 상업 예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1960년대 초 본격적으로 미술계로 진로를 전환했습니다. 당시까지 '예술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던 스크린 인쇄 공법과 아크릴 페인트를 과감히 실험하며 '캠벨 수프 캔', '코카콜라 병', '달러 지폐' 등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기 시리즈를 탄생시켰습니다.
워홀은 일상의 사물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자동차 사고나 항공 사고 현장을 담은 보도 사진을 소재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 등 유명인 초상화 시리즈를 잇달아 선보이며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팝아트 거장을 위한 마지판과 뤼베커 로츠폰
당시 '뤼베커 나흐리히텐(Lübecker Nachrichten)' 문화부 담당자였던 볼프강 체히네(가운데)와 하이너 리스와 함께 있는 앤디 워홀.
그날 저녁, 워홀과 마코스는 뤼베크 시청에서 첫 환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을 기다린 것은 뤼베크의 명물 마지판(marzipan)과 뤼베크산 레드 와인 뤼베커 로츠폰(Lübecker Rotspon)이었습니다. 이후 리스는 두 사람과 함께 전통 레스토랑 뤼베커 시페어게젤샤프트(Lübecker Schiffergesellschaft)에서 만찬을 함께했습니다. 리스는 몇 년 후 NDR과의 인터뷰에서 이 밤을 생생하게 회상했습니다. 특히 디저트 시간에 벌어진 워홀의 해프닝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자리에 있던 '뤼베커 나흐리히텐' 기자가 기사를 집필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크리스토퍼 마코스와 앤디 워홀은 이를 알아차리고 식탁 위 디저트 그릇을 챙겨 들고 사라져 버렸습니다."라고 리스는 말했습니다.
약 2,000㎡ 가구점에서 열린 워홀 베르니사주
1980년 뤼베크 베르니사주에서의 앤디 워홀 — 배경에는 '홀스텐터'가 걸려 있습니다.
만찬이 끝난 뒤 행사의 본무대인 베르니사주(개막전)로 이동합니다. 놀랍게도 그 장소는 박물관이나 대형 갤러리가 아니라 하이너 리스의 가구점이었습니다. 워홀은 약 2,000제곱미터 규모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서 벽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약 150점을 잠시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소란이 너무 커지면 그가 늘 하던 일을 했습니다. 헤드폰을 착용한 채, 그저 행사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날 전시에는 '플라워(Flowers)', '마릴린 먼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등 잘 알려진 시리즈 외에도 완전히 새로운 작품 4점, 즉 '홀스텐터'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4점의 작품은 크리스토퍼 마코스가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팝아트가 된 독일의 건축물들
1980년, 자신이 재해석한 '함부르거 미셸(Hamburger Michel)' 작품 앞에 선 앤디 워홀.
리스에게 1980년은 가구 매장에서 처음 열었던 전시회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가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는 예전부터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예술가들의 회화와 사진을 구입해 왔습니다. 판매장 벽에 새로운 작품을 걸기 위해 갤러리 주인들과 작품을 교환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중반 앤디 워홀과 긴밀히 협력하던 본(Bonn)의 갤러리 오너 헤르만 분쉬(Hermann Wunsch)를 만나게 됩니다. 분쉬는 뤼베크의 미술 애호가 리스에게 워홀 전시회를 제안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리스는 훗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때 작품을 하나 사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좋아요, 문제없습니다. 하나 사겠습니다.'"
이렇게 공동으로 기획된 전시를 위해 '홀스텐터'는 워홀에게 직접 의뢰되어 제작되었고, 4개의 버전이 11월 13일 대중 앞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헤르만 분쉬의 제안으로 워홀이 독일의 건축물을 소재로 만든 '게르마니아 기념비(Monumenta Germaniae)' 시리즈에 속합니다. 여기에는 쾰른 대성당, 베를린 라이히스타그 의사당, 함부르크의 미셸 교회, 지크베르게(Siebengebirge)의 드라켄부르크 성이 포함됩니다. 4점의 '홀스텐터'는 색채가 제각각이었는데, 하나는 분홍색, 또 다른 하나는 벽돌색이었습니다. 리스는 자신이 구매할 작품을 정해야 했고, 결국 분홍색 버전을 선택했습니다.
뤼베크에 남은 워홀의 흔적
워홀은 한자 도시 뤼베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함부르크에서의 전시 일정을 포함해 독일 북부에 며칠을 더 머물렀습니다. '홀스텐터'는 처음에는 하이너 리스의 소유가 되었고, 이후 그가 예술 사업에서 물러나면서 매각되었습니다. 재단의 도움으로 이 그림은 예술·문화사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고, 이후 뤼베크 성 아넨 미술관의 벽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워홀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캠벨 수프 캔 역시 이 한자 도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미국 기업 캠벨(Campbell's)은 2002년부터 뤼베크에 독일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87년 담낭 수술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팝아트의 전설이 오늘날에도 뤼베크에 살아 숨 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