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2만 5천 명이 운집한 함부르크, 그러나 보잉 707은 8분 만에 사라졌다 — 제트기 시대의 탄생

1959년 10월 13일 저녁, 수만 명의 함부르크 시민이 한 대의 여객기를 눈에 담기 위해 풀스뷔텔(Fuhlsbüttel) 공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트기를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날 밤은 실망으로 시작됐지만, 북독일 여객 항공의 새로운 장, 즉 '제트기 시대'의 막을 여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원문: Marc-Oliver Rehrmann, NDR.de

도시를 통째로 끌어모은 첫 제트기 착륙

함부르크 공항은 이전에 이런 광경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1959년 10월 13일 저녁, 2만 5천 명이 넘는 호기심 많은 시민들이 미국 항공사 팬암(PanAm) 보잉 707의 도시 최초 착륙을 지켜보기 위해 풀스뷔텔로 향했습니다. 당시 '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Hamburger Abendblatt)'는 "활주로가 마치 국제 축구 대회를 잔디밭 위에서 개최하는 초대형 경기장처럼 변모했다"고 묘사했습니다. 대규모 경찰 인력이 방벽을 지켰고, 운전자들은 주차 자리를 찾아 공항 일대를 헤매다 빈손으로 돌아왔으며, 최고의 관람 포인트 앞에는 긴 행렬이 늘어섰습니다.

보잉 707, 단 8분 만에 이륙하다

그러나 기대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군중 속 확성기에서는 이미 제트기가 떠났다는 안내가 울려 퍼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보잉 707은 예정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고, 계획된 50분이 아닌 불과 8분 만에 활주로를 떠나 런던 방향으로 다시 이륙한 것입니다.

"실망한 십대들이 미친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새로운 형태의 제트기를 직접 본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아벤트블라트는 "실망한 일부 십대들이 미친 듯이 휘파람을 불었고, 공사 현장의 창문을 깨뜨리기까지 했다"고 전했습니다.

제트기 조종사에게는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 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자 도시에 머문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짧았지만, 이 짧은 저녁이야말로 북독일 여객 항공의 제트기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활주로는 제트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초도 비행에서 보잉 707에서 내린 유일한 인물은 수석 조종사 토머스 플래너건(Thomas Flanaghan)이었습니다. 그는 조종석에서 볼 때 착륙이 매우 순조로웠다고 보고했습니다. 지면 안개에도 불구하고 엘베 강 상공에서 이미 풀스뷔텔 비컨이 선명하게 확인됐다고 합니다. 이 비행은 시험 비행 성격이 강했습니다. 팬암이 곧 함부르크를 노선망에 편입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활주로였습니다. 풀스뷔텔의 가장 긴 활주로는 2,259미터로, 완전히 연료를 채운 보잉 707에는 부족했습니다. 해법은 간단했습니다. 제트기는 최대 이륙 중량의 약 70% 수준으로 한자 도시를 떠나고, 대서양 횡단 노선용 연료는 런던에서 완전히 재급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플래너건 수석 조종사는 첫 착륙 후 "절반만 연료를 채운 기체라면 함부르크의 활주로 길이는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연결

이후 함부르크에서 제트기의 정기 이착륙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첫 방문 약 2주 뒤인 1959년 10월 26일부터 보잉 707은 코펜하겐–함부르크–런던–뉴욕 노선을 주 3회(월·수·금) 운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벤트블라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연결 중 가장 빠른 연결"이라고 평했습니다. 뉴욕까지 순수 비행 시간은 9시간 30분으로, 종전의 절반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흔들림 없이, 조용하게" — 승객들이 목격한 새로운 비행

초기에는 요금이 만만치 않았지만, 여행자들은 한층 향상된 편안함 덕분에 제트 여행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기자는 "터빈 4개를 모두 가동하는 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며 감탄했습니다. "프로펠러기 피스톤 엔진처럼 흔들리거나 출렁이는 일이 없다. 조용한 윙윙거림, 마치 S-Bahn(도시철도) 안에 있는 듯했다."

보잉 707은 1등석 36석을 포함해 총 113석을 갖췄고, 승무원 11명이 함께 탑승했습니다. 당시 함부르크–뉴욕 노선 티켓 가격은 이코노미석 2,324마르크, 일등석 4,266마르크였습니다. 기내 흡연은 여전히 허용됐으며, 이륙 직후 칵테일이 서비스되고 이어 따뜻한 아침 식사가 나왔습니다.

더 높이, 더 빠르게 — 제트기의 압도적 우위

초기 제트 여객기조차 고도 10,000~12,000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었던 반면, 프로펠러기는 3,000~3,500미터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고고도의 낮은 공기 저항 덕분에 제트기는 순항 속도 800~900km/h를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프로펠러기는 이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팬암은 런던·뉴욕 노선뿐 아니라 프랑크푸르트(매일)와 뒤셀도르프(주 4회) 노선도 제트기로 운항했습니다. 함부르크를 오가는 항공편은 주당 총 28편에 달했습니다.

"제트기는 비행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제트기의 등장으로 비행기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거듭났습니다. 뮌헨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의 근대 항공 큐레이터 로베르트 클루게(Robert Kluge)는 "제트기는 대부분의 프로펠러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승객을 실을 수 있었다"며 "그 결과 티켓 가격도 크게 내려갔다"고 설명합니다. 훨씬 빠른 속도는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고, 그는 NDR.de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유럽에서 무경유로 제트기를 타고 미국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며 "그리고 제트기가 비행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트기 시대를 위한 활주로 확장

공항을 미래에 대비시키기 위해 함부르크 상원은 1959년 8월 풀스뷔텔을 제트 전용 공항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번 활주로는 약 1,000미터에서 3,250미터로, 이후 더 짧은 2번 활주로는 1,466미터에서 3,620미터로 각각 확장될 예정이었고, 터미널 건물 역시 '대폭 확장'되었습니다. 한편 상원은 공항을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칼텐키르헨(Kaltenkirchen)으로 이전하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제안은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제트기 소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항공기는 1959년 가을부터 지역 주민들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보잉 707 같은 제트기가 기존 프로펠러기보다 더 시끄러운 것 아니냐는 의문이었습니다. 몇 달 전 프랑스 카라벨(Caravelle) 제트기가 한자 도시에 착륙하며 '지옥 같은 소음'을 낸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주민은 훨씬 큰 보잉 707의 소음을 걱정했지만, 항공 전문가들은 보잉이 더 현대적이고 조용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측 결과에 따르면 707의 엔진 소음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소음보다 크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숙면을 걱정하는 주민들에게는 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뉴욕행 제트기는 우려와 달리 밤이 아닌 한낮에 이륙하기로 한 것입니다. 함부르크 공항은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 사이 이륙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고, "어떤 경우에도" 공항 인근 주민이 편안히 잘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루프트한자의 후발 주자 등장

루프트한자(Lufthansa) 역시 새 항공기로의 전환에 나섰습니다. 함부르크 공항은 1960년 봄 또 한 번의 '첫 비행'을 맞이합니다. 1960년 3월 2일, 루프트한자 조종사 루돌프 마이어(Rudolf Mayr)와 베르너 우터(Werner Utter)가 시애틀에서 막 인도받은 보잉 707을 한자 도시에 착륙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루프트한자의 첫 제트기였습니다. 같은 해 3월 17일, 풀스뷔텔에서 첫 승객이 기내에 올랐습니다. 언론인 14명이 탑승한 보잉 707-430은 함부르크를 출발해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을 경유, 뉴욕으로 향하는 첫 비행에 나섰고, 이로써 루프트한자는 상업 제트 서비스를 공식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까지 40분, 그리고 그곳에서 대서양 횡단에는 8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굉장한 일들이 이어졌다

1960년 10월 활주로 확장 공사가 착수됐고, 1961년 함부르크 공항은 처음으로 연간 승객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970년부터는 '점보 제트'라 불리는 보잉 747을 통해 대륙간 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공항 계류장은 350톤급 항공기를 견디도록 보강됐고, 터미널에는 초대형 항공기 전용 취급 게이트와 함께 최초의 승객 탑승교 2기가 설치됐습니다.

이후 함부르크 공항의 승객 수는 꾸준히 급성장했습니다. 1970년 300만 명에서 2019년에는 1,700만 명을 넘어섰으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처리 승객은 456만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공항 책임자 미하엘 에겐슈빌러(Michael Eggenschwiler)는 이번 여름에도 승객 수가 눈에 띄게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위기가 2023년까지는 완전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