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얀 에hlert(Jan Ehlert), NDR.de
[이미지 설명: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삽화가 『양철북(The Tin Drum)』 초판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1959년 가을,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한 신인 작가의 데뷔 소설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은 왜소한 체구의 소년 오스카 마체라트(Oskar Matzerath). 금기란 없다는 듯 노골적인 디테일은 당대 독일 문학의 정의 자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의 『양철북(The Tin Drum)』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입니다.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는 1959년 11월, 이 책이 독일 비평가들에게 "환희와 분노의 비명"을 불러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양철북』은 독일 문학을 다시 한번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양철북'이 나라를 분열시키다
엔첸스베르거의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양철북』은 그라스를 알프레드 되블린(Alfred Döblin), 토마스 만(Thomas Mann)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20세기 독일어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거센 정치적 스캔들을 낳았습니다. 교회와 군부는 이 책을 "신성모독"이자 "청소년에게 위험한 책"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맞섰습니다. 그라스가 브레멘 시 문학상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브레멘 상원은 이를 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교육 상원의원은 "곧 색인(금서) 목록에 오를 책의 저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결정에 대한 항의의 물결은 뜨거웠습니다.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과 파울 첼란(Paul Celan)도 브레멘 상원에 분노의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양철북』은 이제 단순한 소설을 넘어 하나의 정치적 쟁점이 된 것이었습니다.
침묵에 맞서 북을 두드리다
[이미지 설명: 볼커 슐렌도르프(Volker Schlöndorff, 왼쪽)는 1979년 다비드 벤넨트(David Bennent, 가운데)를 오스카 마체라트 역으로 기용해 이 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양철북』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세 살 때 더 이상 크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하고, 유리를 깨뜨리는 절규 같은 목소리와 양철북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오스카 마체라트의 이야기입니다. 1899년 카슈브 지방의 감자밭에서 시작해 1955년 뒤셀도르프의 한 요양원에서 끝나는 이 이야기 사이에는 50년이 넘는 격동의 독일 현대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을 배경으로, 나치 과거사의 인정을 오랫동안 회피했던 국가사회주의 시대와 연방공화국의 탄생을 다룹니다. 그라스는 이러한 억압과 은폐에 맞서 오스카에게 북을 두드리게 했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가장한 요양원의 그 소년은 전후 수많은 구(舊) NSDAP 당원들의 위선을 고발할 뿐 아니라, 소련군이 들이닥치는 순간 아버지 알프레드 마체라트의 나치당 배지를 슬그머니 떨어뜨립니다. 전후 독일 소부르주아 계층의 상징이자, 독일인들이 한때 열광적으로 추앙하던 영웅적 거인 헤라클레스와 정반대에 선 존재입니다. 지적 성숙을 갖춘 어른이 여러 차례 살인을 저질렀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고자 어린아이로 남기로 결심한다는 설정. 오스카는 전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기형적인 모습을 남깁니다. 현실을 외면했던 시대가 새긴 흉터인 셈입니다.
위선의 기둥 안에서
동시에 오스카는 어린아이의 시선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그라스가 바이마르 시절과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민감성과 부조리를 냉혹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어머니 아그네스(Agnes)의 죽음이나 계모 마리아(Maria)의 방종한 성적 취향처럼 불편한 디테일까지 클로즈업으로 파헤치며 시대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조명합니다. 동시에 그라스는 나치 시대의 관료와 전범들이 너무나 빠르게 사회에 재통합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갑니다. 샤먼 극단의 우두머리 베브라(Bebra), 그리고 랑케스(Lankes) 상병—노르망디에서 여러 수녀를 살해한 장본인임에도 전후에는 수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성공합니다.
이런 극단에 가까운 확대 묘사는 충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후 독일어 문학에서 이토록 금기를 깨는 언어 사용은 전례가 없었고, 그 메시지는 개개인에게 곧바로 꽂혔습니다. 그라스는 양철북을 들고 독일인 각자의 죄책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습니다. 일부가 아니라 독일 국민 전체가 처참한 결과를 낳으면서도 국가사회주의에 동조했다는 것, 그것이 오스카의 메시지였습니다. 북소리는 이 재평가를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미지 설명: 1999년 12월 10일, 귄터 그라스가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59년 독일의 다른 거장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은 그해 대표작 중 하나인 『9시 반의 빌야드』를 출간했고, 신예 우베 존슨(Uwe Johnson)은 데뷔작 『야콥에 관한 추측』으로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양철북의 울림은 독일 국경을 넘어 세계에 닿았고, 독일 문학은 국제적으로 다시 한번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양철북』은 "20세기 독일 소설의 재탄생"으로 평가받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출간 40년 만에 이 첫 소설의 가치를 공식 인정하며 그라스에게 문학의 최고 영예인 노벨문학상을 수여했습니다.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 존 어빙(John Irving),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 오에 겐자부로(Kenzaburo Oe) 같은 세계적 작가들 역시 이 작품에서 동기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어빙은 1982년 "『양철북』은 살아 있는 작가가 쓴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빙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라스 자신조차 이 데뷔작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양철북': 귄터 그라스의 영광이자 저주
그라스 자신도 자신의 전체 작품 세계가 『양철북』 한 권으로 축소되는 데 대해 반복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물론 저자의 다른 걸작들이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단치히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인 『고양이와 쥐』와 『개의 세월』, 소설 『넙치』, 그리고 2006년 그라스가 무장친위대(Waffen-SS) 소속이었다고 고백하며 세간의 화제를 모은 자전적 작품 『양파 껍질 까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귄터 그라스라는 이름은 데뷔작 『양철북』, 그리고 오스카 마체라트와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