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이란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거나 고독과 친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때로 적대적인 상대, 그리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는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대결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북서 항로의 최초 통과자, 혹은 남극점에 먼저 도달한 자의 영예를 두고 벌어진 싸움. 오늘은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탐험가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조명한다.
“무한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유한한 것을 모든 방향으로 탐구하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의사의 꿈에서 극지 탐험가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려던 아문센의 운명은 1889년, 프리드쇼프 난센이 스키를 타고 그린란드를 횡단하고 귀환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소년의 가슴에 극지 탐험의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학업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스물다섯 살에 아드리엔 드 제를라슈의 남극 탐험대 벨지카(Belgica)호의 부선장으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항해에 나선다.
이 탐험에서 그는 선박 의사 프레더릭 쿡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쿡은 펭귄 고기를 먹여 선원들을 괴혈병에서 구해내며, 최초의 남극 겨울나기(월동)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경험은 훗날 아문센이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는 노하우를 체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인류 최초의 북서 항로 돌파
첫 단독 탐험으로 아문센은 콜럼버스, 카보트, 카르티에 등 수많은 탐험가가 꿈꿨으나 실패한 북서 항로(Northwest Passage) 정복에 나섰다. 난센의 지원과 '자기 극점 탐사'라는 과학적 명분을 얻어, 1903년 6월 16일 채무에 시달리면서도 6명의 선원과 작은 물개잡이 배 요아(Joah)호를 타고 출항했다.
세 번의 혹독한 겨울을 나며 자기 관측을 수행하고, 넷실릭 이누이트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생존 기술을 익혔다. 마침내 1906년 8월 30일, 알래스카 놈(Nome) 항에 입항하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북서 항로 완주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세기의 대결: 남극점 정복, 스콧을 이기다
이후 난센의 배 프람(Fram)호을 빌려 북극점 표류 탐험을 준비하던 중, 1909년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목표를 잃은 듯 보였으나, 아문센은 비밀리에 목표를 남극점으로 돌렸다. 1910년 6월 출항 당시 그의 동생 외에는 아무도 목적지를 몰랐다.
그는 로스 해의 고래 만(Bay of Whales)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는데, 이는 경쟁자 로버트 팰컨 스콧의 기지보다 남극점에서 약 100km나 더 가까웠다. 치밀한 준비성은 여기서 빛났다. 사전에 식량 저장소를 루트 곳곳에 비축해 두었고, 스콧이 시베리아 조랑말에 의존한 것과 달리 썰매개 52마리를 운송 수단으로 선택했다.
1911년 10월 19일, 4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아문센은 12월 14일, 스콧보다 34일 먼저 남극점에 노르웨이 국기를 꽂았다. 스콧 일행은 이듬해 1월 17일 남극점에 도달했으나, 귀로에 전원 조난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아문센 일행은 과학 관측을 마친 뒤 12월 17일 귀환을 시작해 1912년 1월 25일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하늘로 향한 도전, 그리고 미스터리한 최후
제1차 세계대전 후, 아문센은 미국의 후원자 링컨 엘스워스와 함께 비행선으로 북극점 상공 횡단을 시도했다. 수상 비행기 시도가 두 번 실패한 후, 움베르토 노빌레가 설계하고 조종한 비행선 노르게(Norge)호를 타고 1926년 노르웨이에서 알래스카까지 3일간의 비행을 성공시켰다. 리처드 버드가 비행기로 먼저 북극점 상공을 통과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아문센은 극지 상공을 무착륙 횡단한 최초의 기록을 세우며 '극지 항공로'를 열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28년, 노빌레의 비행선 이탈리아호가 북극에서 조난당하자 아문센은 구조 비행기에 올라탔다. 56세의 나이였다. 그는 노빌레 일행을 찾기 위해 북극의 바다 위로 날아올랐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탐험가의 삶답게, 그는 자신이 사랑한 얼음 바다의 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주요 연보
- 1889년: 프리드쇼프 난센, 스키로 그린란드 횡단 성공 (아문센에게 영감 부여)
- 1903~1906년: 인류 최초 북서 항로 통과
- 1911년 12월 14일: 인류 최초 남극점 도달
- 1918년: 조종사 면허 취득
- 1926년: 비행선 노르게호로 북극점 상공 횡단 및 알래스카까지 무착륙 비행
- 1928년: 노빌레 구조 작전 중 실종
참고 문헌
- 라루스 백과사전 (온라인)
- 그들은 극점을 정복했다: 로알 아문센, 로버트 팰컨 스콧 (2008)
- 인류의 위대한 순간들, 슈테판 츠바이크 (2004)
- 북서 항로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