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도 3세(Bermudo III)는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을 다스린 왕으로, 1009년에 태어나 1027년 아버지 알폰소 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후사 없이 생을 마감하면서 아스투리아스·레온 왕국의 남성 직계 왕위 계승은 끝이 났고, 왕국은 여성 상속을 통해 카스티야로 넘어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혼담과 가르시아 산체스 백작의 암살
1028년 버뮤도 3세는 카스티야 백작 가르시아 산체스의 누이인 히메나 테레사(우라카라고도 불림)와 결혼했습니다. 한편 가르시아 산체스 백작 자신은 버뮤도 3세의 누이 산차와의 혼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혼식을 위해 레온에 도착했을 때, 혼인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1029년 5월 13일 알라바 출신 벨라 백작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니다. 이 살해는 과거 산초 가르세스(살해당한 가르시아 산체스의 아버지)에 의해 카스티야에서 추방되었던 벨라 가문의 복수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카스티야 백국은 나바라 왕 산초 가르세스 3세가, 살해된 가르시아 산체스의 누이이자 자신의 아내인 엘비라를 통해 상속받게 됩니다.
산초 가르세스 3세와의 영토 분쟁
이제 산초 가르세스 3세의 영토는 버뮤도 3세의 왕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양측의 갈등은 곧 표면화됩니다. 팔렌시아 시는 알만조르의 침입 이전에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는데, 산초 가르세스 3세는 이곳 성 안톨린 자리에 신전을 세워 도시를 재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버뮤도 3세는 해당 영토가 자신의 왕국에 속한다며 이 프로젝트에 반대했지만, 나바라 측은 그 땅이 카스티야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맞섰습니다.
이후 버뮤도 3세가 갈리시아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몰두하는 사이, 산초는 피수에르가 강과 케아 강 사이의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버뮤도 3세가 이에 맞서자, 나바라와 레온 양측 주교들의 중재로 평화 협상이 이루어졌습니다. 평화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버뮤도 3세의 누이 산차(일찍이 살해된 가르시아 산체스 백작과 약혼했던 인물)가 산초 가르세스 3세의 차남 페르난도와 결혼하기로 합의되었고, 페르난도는 카스티야 백국과 함께 나바라가 점령했던 피수에르가~케아 사이의 영토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1032년 거행되었으며, 이로써 카스티야 왕국이 탄생하고 초대 국왕은 페르난도 1세와 그의 아내 산차가 되었습니다.
타마론 전투와 왕국의 통합
그러나 버뮤도 3세가 갈리시아에서 무슬림과 싸우는 동안 산초 가르세스 3세는 다시 레온 왕국을 침공하여 아스토르가를 점령했습니다. 1035년 산초가 사망하자 버뮤도 3세는 빼앗겼던 영토를 회복했고, 여동생 산차의 혼수로 넘어갔던 피수에르가와 케아 사이의 땅도 되찾고자 했습니다. 이에 버뮤도 3세는 군대를 이끌고 카스티야로 진격했지만, 1037년 6월 팔렌시아 북쪽 타마론 계곡 전투에서 페르난도에게 패배해 전사했습니다. 당시 페르난도는 1035년 나바라 왕위를 물려받은 형 가르시아 산체스 3세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후사가 없었던 버뮤도 3세의 왕국은 누이 산차에게 돌아갔고, 산차는 새로 세워진 카스티야 왕국의 왕 페르난도와 결혼한 상태였기에 1037년 6월 두 왕국의 통합이 완성됩니다. 이로써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은 카스티야 왕국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두 왕국은 '레온 왕'이라는 칭호를 겸한 페르난도 1세의 주권 아래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