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릭(Amalric)은 서고트 왕국의 왕으로, 서기 502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알라릭 2세(Alaric II)와 그의 아내 테오데곤다(Theodegond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탈리아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 대왕의 딸이었습니다.
테오도리크는 게살릭(Gesaleic)을 폐위하고 손자 아말릭을 왕위에 앉힌 뒤, 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프로방스 지역을 유지했으며 섭정 자격으로 서고트 왕국을 직접 통치했습니다. 또한 아말릭의 교육은 동고트족 출신인 테우디스(Theudis)에게 맡겼습니다.
테오도리크는 히스파노-로마 귀족들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습니다. 그는 법적·행정적 기능을 갖춘 갈리아 총독부(아를 소재)를 설립하고 히스파노-로마 귀족을 그 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서고트 왕국의 군사권은 동고트족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권력 분립을 통해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가톨릭과 아리우스파 사이의 종교적 화해를 추구했고, 그 결과 두 집단 간의 통혼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한편 서고트 정치의 중심지는 이 시기 이베리아반도 북서부로 옮겨갔습니다.
아말릭의 왕권 장악
526년, 테오도리크는 손자 아말릭이 법적으로 성년에 도달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곧이어 테오도리크가 사망하자 그의 또 다른 손자인 아탈라릭(Atalaric)이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계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테오도리크와 함께 반도에 왔던 동고트족들은 이탈리아로 되돌아갔고, 그 결과 서고트의 히스파니아 정부는 이탈리아의 동고트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529년에는 서고트 정부가 갈리아 총독부에서도 분리되었습니다.
아말릭은 사촌 아탈라릭과 조약을 체결하여 로다누스 강을 두 왕국 사이의 경계로 삼았고, 아탈라릭이 할아버지가 가져간 보물을 서고트족에게 반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편 아말릭은 프랑크족과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프랑크 왕 클로비스(Clovis)의 딸인 클로틸드(Clotilde)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아말릭은 열렬한 아리우스파 신자였고 아내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종교 문제로 인해 곧 부부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아말릭은 아내를 그녀의 종교에서 배교시켜 아리우스파 신앙으로 개종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클로틸드가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까지 오랫동안 그녀에게 일련의 학대를 가했습니다.
클로비스의 뒤를 이어 프랑크족의 왕이 된 그녀의 오빠 힐페베르트 1세(Childebert I)는 즉각 군대를 이끌고 진군했습니다. 프랑크군은 서고트 영토에 진입하여 아말릭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힐페베르트 1세는 여동생 클로틸드를 데려갔지만 그녀는 프랑크 궁정으로 돌아가던 도중 사망했습니다.
서고트족의 패배 이후 아말릭은 531년, 테우디스를 새 왕으로 선포한 자신의 군대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아말릭의 몰락을 계기로 서고트족의 갈리아에서 이베리아반도로 향하는 마지막 대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