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디르크 헴펠(Dirk Hempel), NDR.de
1944년 6월 13일 이른 아침, 잉글랜드 남부의 사람들은 낯선 엔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불타는 듯한 꼬리를 끌며 황혼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길쭉한 비행 물체. 그러다 갑자기 소음이 멎고, 그 물체는 지면으로 곤두박질쳐 거대하게 폭발합니다.
830kg의 폭발물을 탑재한 이 비행폭탄은 지름 6m에 달하는 분화구를 만들었고, 그 충격은 100m 바깥까지 파괴력을 퍼부었습니다. 이날 새벽 총 4발의 비행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런던에서는 6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많은 가옥이 파손되고 철교 하나가 완파됐습니다.
'최종 승리'를 위한 순항미사일
V1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순항미사일입니다. 독일 공군은 프랑스 해협 연안에서 이 폭탄을 발사했습니다. 전쟁 역사상 최초의 순항미사일인 '피젤러 Fi 103(Fieseler Fi 103)'으로, 실전 투입 전 우제돔 섬의 페네뮌데(Peenemünde)에서 수개월간 시험 비행을 거쳤습니다.
V1은 '베르겔퉁스바페 1(Vergeltungswaffe 1)', 즉 '보복 무기 1호'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나치 선전은 연합군의 독일 도시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이를 선전했습니다. 히틀러와 괴벨스가 오랫동안 예고해 온, 전쟁 5년 차에 전황을 뒤집고 '최종 승리'를 이루겠다는 소위 '경이로운 무기' 중 첫 번째였습니다.
페네뮌데 시험장, 개발의 산실
독일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낙하폭탄과 달리 스스로 거리를 비행하고 목표물까지 어느 정도 유도할 수 있는 글라이딩 폭탄·어뢰·비행폭탄 연구가 진행돼 왔습니다. 베를린의 헨셸(Henschel), 함부르크의 블롬 운트 포스(Blohm + Voss)와 함께 카셀의 피젤러 공장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942년 6월, 제국 항공부는 'Fi 103' 순항미사일을 양산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불과 6개월 후, 우제돔 섬 페네뮌데-베스트 공군 시험장에서 첫 발사가 이뤄졌습니다. 폭탄은 길이 48m, 높이 6m의 발사대를 갖춘 캐터펄트, 이른바 '발터 슬링샷(Walter-Schlitten)'으로 가속해 이륙했습니다. 이 장치의 이름은 킬(Kiel)의 잠수함 엔지니어 헬무트 발터(Hellmuth Walter)에서 따온 것입니다.
카운터가 멈추면 폭탄은 하강한다
V1의 동체 길이는 7.20m, 날개폭은 5m가 넘으며, 무게는 2.1t에 달합니다. 펄스젯 엔진으로 구동돼 최고 시속 약 640km까지 날아갈 수 있었고, 사거리는 약 240km였습니다. 사전에 설정된 거리에 도달하면 카운터가 연료 공급을 차단하고 승강타가 기울면서 폭탄은 하강을 시작합니다. 목표 정확도는 12km 이내에 불과했지만, 런던처럼 거대한 도시라면 충분히 치명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영국 언론, '조종사 없는 항공기' 공격 보도
1944년 6월 13일 처음 네 발이 추락한 직후, 영국 정부는 국민의 공포가 커질 것을 우려해 언론의 비행폭탄 관련 보도를 일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만에 신문들은 영국 본토를 향한 '조종사 없는 항공기'의 공격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군은 이미 비행폭탄을 활용한 본격적인 대규모 공격에 착수한 상태였고, 이 공세는 수주 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대규모 공세 첫날에는 73발의 V1이 영국 수도권을 강타했습니다. 특유의 소음 때문에 영국인들은 이를 곧 '두들버그(doodlebug)', 즉 '버즈 폭탄(buzz bomb)'이라 불렀습니다.
공격으로 집을 잃은 한 런던 시민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프로펠러도 없고 꼬리도 없었다. 고도는 점점 낮아졌다. 동체 뒤쪽으로 1미터 길이의 번개 같은 화염이 5초 간격으로 뿜어져 나왔다. 붉은 노란색 불꽃이었다. 그것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자마자 엔진이 꺼졌다. 폭탄은 반원을 그리며 날다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몇 초 후 이웃집 지붕을 뚫고 폭발했다."
하루 최대 100발, 런던 상공에 떨어지다
같은 시기 현장에 있던 민방위 요원은 1944년 6월 중순의 공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연기와 먼지의 악몽 같은 풍경이었다. 거리에는 나뭇잎과 유리 조각, 잔해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부상자와 무사한 사람들이 어스름한 황혼 속에서 혼란에 빠져 어쩔 줄 몰랐다. 어떤 이들은 다쳤지만 대부분은 무사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주일 만에 런던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 주택과 도로, 철도가 파괴됐습니다. 1940~41년 독일 공군의 수개월간 폭격 이후 두 번째 '블리츠'가 시작된 것입니다. 6월 말까지도 하루 평균 70~100발의 V1 폭탄이 런던에 떨어졌고, 공포가 주민들 사이에 빠르게 번졌습니다.
표적은 벨기에까지 확대되다
1945년 3월까지 독일군은 영국 목표물에 약 10,500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으며, 1944년 9월 프랑스에서 후퇴한 뒤에는 네덜란드와 자국 영토에서도 발사했습니다. 또한 수백 발의 V1이 하인켈(Heinkel) 폭격기에서 공중 투하됐습니다. 대부분은 런던을 겨냥했지만 맨체스터, 사우샘프턴, 글로스터도 표적이 됐습니다.
전쟁 말기에는 벨기에가 순항미사일 공격의 중심이 됐습니다. 안트베르펜, 브뤼셀, 리에주 등 연합군 보급 항만을 겨냥해 총 11,892발의 V1 폭탄이 발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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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전쟁 역사상 최초의 순항미사일
- 2부: 폭탄 이후 V2 로켓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