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애정 어린 별명으로 '리카르디토'라고 불렀습니다. 오늘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름 중 하나, 리처드 1세 '사자심왕(Lionheart)'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전설과 실제 기록 사이에는 재미있는 간격이 있습니다.
대학 못 간 이유? 왕이라서
리처드는 1157년 9월 8일 옥스퍼드에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 어머니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었던 아키텐의 알리에노르입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리처드는 평생 대학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가 왕이었으니까요. 당시 옥스퍼드에는 이미 학문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왕관을 쓴 머리에는 학위모 대신 철투가 어울린 법이죠.
트루바두르들 사이에서 자란 소년
어머니 알리에노르은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문화 후원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녀의 궁정은 시인과 음유시인(트루바두르),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일종의 문화 살롱이었고, 어린 리처드는 그 한가운데서 자랐습니다. 덕분에 그는 검술만큼이나 시와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지나치게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기사로 성장했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던 금발 머리칼과 더불어 그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사자의 심장', 즉 사자심왕입니다. 다만 농담 반 진담 반, "포효하는 사자라기보다는 야옹거리는 새끼고양이에 가까웠다"는 평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왕과 기묘하게 가까운 동맹
시간이 흐르고, 리처드는 프랑스의 젊은 왕 필리프 2세 오귀스트와 동맹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좀 특이했습니다. 연대기 작가 로저 오브 웬도버는 두 왕이 한 침대를 같이 쓰며 자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기록했고, 중세 역사가들은 오늘날까지 이 장면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해 십자군 원정을 서원했습니다.
계기는 1187년의 참변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이 살라딘에게 대패한 하틴 전투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교황 그레고리오 8세는 새로운 십자군을 호소했고, 유럽의 왕들이 하나둘 십자가를 받아 들었습니다.
제3차 십자군: 아크레의 분노와 아르수프의 영광
가장 먼저 출발한 독일의 노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는 안타깝게도 아나톨리아의 강가에서 익사하고 맙니다. 전승에 따르면 말에서 떨어진 그를 무거운 갑옷이 강 바닥으로 끌어내렸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원정에서 사실상 이탈하면서 무대는 리처드와 필리프에게 남았습니다.
아크레 함락 후 사건이 터집니다.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가 자신의 깃발을 성벽에 올리자, 리처드는 "이 성은 내 공이자 내 왕국의 것이다"라며 격분, 공작의 깃발을 뽑아 땅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 굴욕적인 순간은 훗날 리처드의 목줄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리처드는 눈부셨습니다. 1191년 아르수프 전투에서 그는 살라딘의 군대를 정면으로 격파하며 '기사 중의 기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그와 살라딘은 서로를 존경하는 기묘한 관계였고, 리처드는 심지어 여동생 조앤과 살라딘의 동생 알아딜의 결혼까지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필리프는 아크레 이후 귀국을 선언했고, 동료들을 홀로 남긴 이 결정은 배신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귀환길의 포로, 어머니의 구출 작전
성지에서의 임무를 마친 리처드는 육지로 돌아오던 중 폭풍으로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오스트리아 영내를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체포됩니다. 아크레에서 던져진 깃발의 원수, 레오폴트 공작이 그를 붙잡아 신성로마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넘긴 것입니다. 명백한 복수극이었죠.
석방 조건은 천문학적인 몸값, 약 15만 마르크. 이 기름진 몸값을 마련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 알리에노르였습니다. 세금을 갈굴 갈굼대로 걷느라 잉글랜드의 국고는 완전히 텅텅 빌 지경이었습니다. 역시 어머니만 한 게 없습니다.
마지막 화살
풀려난 리처드는 생애 마지막 몇 년을 프랑스 영지에서 옛 '동맹' 필리프와의 전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1199년 3월, 리무쟁 지방의 샤루샤브롤 성 공성전에서 그의 어깨에 석궁 화살이 꽂힙니다. 상처는 곧 괴저로 번졌고, 리처드는 4월 6일 41세를 일기로 눈을 감습니다.
그동안 그의 가슴에 꽂혔던 화살은 모두 큐피드가 쏜 것들이었다지만, 이번 것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사자왕의 이야기는 이렇게, 화려함과 허탈함이 뒤섞인 채 막을 내렸습니다.
파호스키 멘탈리스(Pajosky Mentalis) 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