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가 1492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인의 관점이며, 콜럼버스 이전의 원주민들은 이미 그 대륙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가설이 등장하며 교과서의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발견자'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새 대륙에 발을 딛은 최초의 비원주민이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일부는 비교적 탄탄한 근거를 갖추고 있고, 일부는 다소 무리수가 있는데요. 여기 몇 가지 주요 가설을 소개하니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레이프 에릭슨 – '행운아'
레이프 에릭슨(Leif Eriksson)은 '붉은 에릭(Erik the Red)'의 아들로, 서기 1003년 그린란드를 출발해 서쪽으로 항해한 바이킹 탐험가입니다. 그는 빈란드(Vinland)라 부르는 땅에 도달했는데, 당시의 기록과 현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오늘날의 뉴펀들랜드(Newfoundland)로 추정됩니다. 이듬해 그의 동생 토르발드(Thorvald)가 같은 항로를 따라 나섰고, 원주민과 최초로 접촉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정화 – 명나라의 대해양 탐험가
정화(Zheng He)는 중국 명나라의 군인이자 제독, 탐험가로, 1405년부터 1433년 사이에 수행한 대규모 해상 원정으로 특히 유명합니다. 그는 항해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실론(스리랑카), 인도, 페르시아만,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모잠비크 해협까지 이르는 동아프리카 연안을 탐사했습니다. 2006년에는 1418년 작성된 고대 지도의 사본이 발견되면서 정화 역시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중국 전승에 따르면 불교 승려 혜심(Hui Shum)이 이미 서기 485년에 유카탄 반도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과테말라(Guatemala)라는 국명 자체가 석가모니의 본명인 고타마(Gautama)에서 유래했다는 설까지 존재합니다.

정화의 항해 지도
아부바카리 2세 – 말리 제국의 항해 황제
아부바카리 2세(Abubakari II)는 말리 제국의 만사(mansa, 황제)로, 해상 원정에 깊은 관심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1310년 그는 군인과 거의 모든 직업 집단의 대표들로 구성된 400척 규모의 선단을 대서양으로 파견했지만, 단 한 척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에도 꺾이지 않고 그는 이듬해 직접 원정에 나섰으며, 중앙아메리카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가설은 노예 무역이 시작되기 전부터 브라질에 아프리카 문명의 흔적이 존재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도그 아브 오와인 그위네드 – 웨일스의 전설적 왕자
전설에 따르면 마도그 아브 오와인 그위네드(Madog ab Owain Gwynedd)는 1170년 고향 웨일스의 형제 간 권력 다툼과 내분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웨일스 왕자였습니다. 그는 100여 명의 사람들을 남겨 정착지를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190년에는 추가 탐사를 위한 두 번째 원정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정착지는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고, 그 역시 원주민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인도 전설 속 항해자들
힌두 전설에는 콜럼버스보다 무려 2,000년 앞서 인도 항해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야족 사이에서 함께 살았던 보탄(Votan), 브라질 지역의 수메(Sume) 등이 그 예로 언급됩니다.
어떤 가설이 사실에 가장 가까울까요? 이제 결론을 내리는 일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