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부르고뉴의 플로린 — 제1차 십자군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14세 소녀의 비극

비잔틴 제국의 위기와 십자군의 탄생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는 비잔틴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고, 황제 로마노스 4세 디오게네스마저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 승리를 발판 삼은 투르크는 곧 아나톨리아 반도 침공에 나섰고, 불과 몇 년 만에 비잔틴 제국은 최대 곡창지대이자 병력 동원의 핵심 기지였던 영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때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비잔틴은 이제 셀주크의 압박 앞에서 국경 방어조차 버거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은 물론 국경 방어조차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교황 우르바노 2세에게 사절단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분열된 기독교 세계—가톨릭과 정교회—를 하나의 깃발 아래 결집할 절호의 기회로 본 교황은 황제를 돕는 것은 물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뒤에는 군대를 성지로 보내 예루살렘을 탈환하라는 지시까지 내릴 계획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우르바노 2세는 모든 기독교도에게 십자가의 깃발 아래 이교도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했습니다…

Deus vult —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부르고뉴의 플로린 — 제1차 십자군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14세 소녀의 비극

전대사와 구원의 약속, 그리고 진군

교황은 이 대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강력한 동기를 마련했습니다. 십자군에 참전한 모든 이에게 전대사를 부여하고,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 자에게는 구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에 툴루즈의 레몽 4세, 부용의 고드프루아, 베르망두아의 위그, 타란토의 보에몬드 등이 주력 부대를 이끌고 1096년 중반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했습니다. 서로 다른 출발지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따른 4개의 십자군 부대는 1097년 4월 콘스탄티노플 성문 앞에서 집결했습니다.

제1차 십자군에는 다양한 집단과 민족이 참여했습니다. 그중에는 덴마크 왕 스벤 2세 에스트리드손의 사생아이며, 십자군 스벤이라 불린 지휘관이 이끄는 약 1,500명 규모의 덴마크 부대도 있었습니다. 사생아라는 단어가 일화처럼 들릴 수 있지만, 덴마크 왕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녀 20명 가운데 적출은 단 한 명뿐이었고, 그마저 어려서 요절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가 거느린 여러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훗날 덴마크의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덴마크 부대의 최전선에는 스벤과 함께 그의 어린 아내 플로린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르고뉴 공작 오토 1세의 딸이었습니다.

부르고뉴의 플로린 — 제1차 십자군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14세 소녀의 비극
부르고뉴의 플로린

카파도키아의 매복, 그리고 최후

십자군과 셀주크의 첫 충돌은 아나톨리아 영토에서 벌어졌습니다. 카파도키아 평원을 횡단하던 덴마크 부대는 투르크 군의 매복 공격을 받았습니다. 빽빽하게 전진하는 대군은 정지한 채 높은 지점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에 노출되기 쉬운 표적이나 다름었습니다. 첫 공격을 간신히 이겨낸 그들은 곧이어 두 번째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기마 궁수들이 접근해 화살을 쏘고 재빨리 물러나는 전술이 거듭되면서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했고, 이는 덴마크인들에게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세 번째 공격은 십자군보다 훨씬 기동성이 뛰어난 투르크 경기병대가 감행했고, 그 결과는 파괴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덴마크인들은 스벤과 플로린이 맨 앞장서는 가운데 하루 종일 싸웠습니다. 수백 구의 쓰러진 시체에 둘러싸여 검을 쥘 힘이 남은 병사들만 남은 상황에서, 화살에 부상당한 플로린과 함께 부부는 산을 향해 말을 몰았습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지점은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확실한 이점을 제공했을 테니까요… 비록 투르크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 앞에서 그 이점마저 역부족이었지만요. 두 사람은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플로린은 겨우 14세였습니다.

전설로 남은 소녀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버너드 매케이브는 역사소설 『부르고뉴의 공주 플로린』(1855)을 통해 이 소녀의 전설을 후세에 길이 남겼습니다.

부르고뉴의 플로린 — 제1차 십자군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14세 소녀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