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렌스 설리번(John L. Sullivan)은 '보스턴 스트롱보이(Boston Strong Boy)'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장갑 없이 겨루는 런던 프라이즈 링 규칙(London Prize Ring Rules) 시대의 마지막 챔피언이자, 오늘날 복싱의 기본이 된 퀸즈베리 후작 규칙(Marquess of Queensberry Rules)에 따라 장갑을 착용하고 싸운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미국 선수라는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설리번은 동네 거리에서 주먹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스트롱보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권투 경기가 불법이었지만, 그는 비공개 경기를 통해 명성을 쌓았고, 1882년 미시시피주 걸프포트에서 열린 비공식 챔피언십에서 아일랜드 출신 패디 라이언(Paddy Ryan)에게 도전해 승리하며 첫 번째 미국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듬해부터 1년간 그는 타이틀 방어를 위해 전국을 순회했고, 도전자가 자신과 단 4라운드만 버티면 상금을 주겠다고 내걸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상금을 차지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경기는 1889년 7월 8일에 열렸습니다. 상대는 설리번보다 젊고 음주 버릇도 덜한 제이크 킬레인(Jake Kilrain), 즉 맨주먹으로 타이틀에 도전하는 마지막 도전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당국이 이를 알아차리고 금지하면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준비는 극비리에 진행되었습니다. 개최지로는 미시시피주의 작은 마을 리치버그(Richburg)가 선정되었고, 보안관에게 200달러를 지불한 뒤 관중들은 목적지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경기 당일 설리번은 며칠간 잠을 못 잔 듯, 마치 위스키 통에서 곧바로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킬레인은 장미처럼 산뜻한 컨디션을 자랑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대혈투가 시작되었습니다.
15분씩 진행된 라운드마다 펀치가 앞뒤로 오갔고, 일부는 규정을 어긴 반칙이기까지 했습니다. 설리번의 귀는 헝겊처럼 늘어졌고, 킬레인의 눈은 부어올랐습니다. 도전자 킬레인은 설리번의 필살기인 강력한 바디블로우를 피하느라 애를 썼고, 라운드 사이사이 계속 차를 마시다 보니 몸이 더 이상 타격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44라운드에서 설리번이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끝난 줄 알았습니다.
"차는 그만 주고, 위스키만 더 주게... 속이 안 좋구나." — 그는 코너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 복서가 쓰러지거나 숨을 고르기 위해 무릎을 꿇으면 라운드가 종료되는 방식이었고, 뜨거운 태양 아래 등에는 물집이 잡혔습니다 — 폭격 같은 공방은 무려 75라운드!!!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킬레인의 코너맨 마이크 도노번(Mike Donovan)이 수건을 던졌습니다. 챔피언은 타이틀을 지켜냈고, 1892년 짐 코벳(Jim Corbett)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장갑을 착용한 경기에서도 왕좌를 굳건히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