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자유의 여신상, 30년 앞선 스페인의 자유의 여신상을 베낀 것일까?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 중 하나입니다. 맨해튼 섬 남쪽의 리버티 섬에 위치하며, 허드슨 강 하구 옆 엘리스 섬 근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선언 100주년을 기념하고 양국 간의 우정을 상징하기 위해 미국에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1886년 10월 28일, 당시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거행되었으며, 이 조각상은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의 작품입니다.

자유의 여신상, 30년 앞선 스페인의 자유의 여신상을 베낀 것일까?

바르톨디가 남긴 특허 기록

1879년 2월 18일, 바르톨디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세계를 밝히는 자유를 형상화한 조각상. 한쪽 팔을 높이 들어 횃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새겨진 판을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관을 쓴 옷을 입은 여성 형상으로 구성된다. 얼굴은 고전적인 특징을 지니면서도 진지하고 평온하며, 몸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 왼쪽 다리가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 조각 예술로 알려진 어떠한 방법으로도, 조각상이나 소형 조각물의 형태로, 고부조나 저부조로, 금속·테라코타·석고 또는 기타 어떤 조형 재료로든 이를 복제하는 것은 금지된다."

제막식보다 30년 앞선 스페인의 '자유의 여신'

그런데 제막식으로부터 30여 년이나 앞선 1855년, 스페인에는 이미 '우리만의 자유의 여신상'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사라고사 출신 조각가 폰시아노 폰사노(1813~1877)의 작품으로, 지금의 자유의 여신상과 너무나도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30년 앞선 스페인의 자유의 여신상을 베낀 것일까?

1853년 폰사노는 아구스틴 아르구엘레스, 후안 알바레스 멘디사발, 호세 칼라트라바 등 저명한 자유주의 정치인 세 명의 영묘를 장식할 조각상 제작 의뢰를 받았습니다. 높이 약 2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은 제노바 출신 티토 니콜리가 1차로 깎아 놓은 카라라 대리석 원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작가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유는 활달하고 젊으며, 가볍게 옷을 입은 모습일 것이다. 머리에는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우렁찬 머리칼 사이로 빛줄기를 발산할 것이다 [...] 오른손에는 예속의 상징인 멍에를 부쳤음을 보여주며, 그 멍에를 발로 밟고, 반대쪽 다리가 더 단단하게 버티는 역할을 할 것이다 [...] 다른 손에는 홀을 들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디테일 하나. 자유의 의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폰시아노는 오른발 옆에 고양이 한 마리를 배치했습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마드리드의 위인 판테온(판테온 데 로스 일류스트레스)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폰사노가 세상을 떠날 때는 워낙 가난했던 탓에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소묘 작품 매입'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지원해야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결론은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