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고대 그리스 교육: 호메로스 서사시가 빚은 그리스인의 형성

고대 그리스의 교육, 곧 고전기(古典期) 그리스인의 형성은 호메로스에게 귀속되는 서사시에 크게 힘입었다.

고대 그리스 교육: 호메로스 서사시가 빚은 그리스인의 형성

헬라데스와 폴리스, 그리고 공통의 교육적 토대

고대 그리스는 '헬라데스(Hélades)'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는 기원전 8세기부터 5세기 사이 에게해 연안, 즉 아티카,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 최서부) 등지에서 발전한 폴리스, 이른바 도시 국가들의 총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각 폴리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조직의 모든 과정에서 자율성을 지녔으며, 시민을 교육하는 방식 역시 저마다 달랐다. 그럼에도 모든 도시 국가의 교육 구조를 관통하는 하나의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였다.

호메로스는 실존했는가?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와 고대 문학 전문가들은 시인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를 놓고 추측을 이어가고 있다. 호메로스는 신화적 인물의 특징을 지니는데, 눈이 먼 시인으로서 소위 '선(先)호메로스 시대'의 방대한 구전 설화들을 수집하고 질서를 부여한 인물로 전해진다.

실존 인물이었든 후대 시인들이 만들어 낸 상징적 인물이었든,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호메로스에게 귀속된 장편 서사시 일리아스(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다룸)와 오디세이아(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기를 그림)는 그리스인의 형성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영웅을 본보기로 삼는 귀족적 교육

아테네인이든 테베인이든 스파르타인이든, 그리스인들은 공통적으로 귀족적 교육이라 할 수 있는 형태의 교육을 받았다. 요컨대 호메로스 서사시 속 영웅들을 모범으로 삼아, 인간을 가장 완성된 존재로 이끌 덕목들을 본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용기, 신중함, 지략이 대표적인 덕목이었다.

또한 호메로스의 작품을 집단으로 읽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고전 그리스어에 대한 깊은 이해력과 시구(詩句)의 운율감을 함께 길렀다. 이는 정치, 전쟁 등 모든 공적 활동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밑천이 되었다.

베르너 예거가 말하는 '파이데이아'

고대 문화 연구의 거장 베르너 예거(Werner Jaeger)는 저서 『파이데이아 – 그리스인의 교육』에서 호메로스 시가 헬레니즘 교육에서 차지한 중심적 위상을 명확히 보여주며, 플라톤과 핀다로스 같은 고전기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미친 영향을 짚었다.

"호메로스 교육을 통한 귀족 정신 형태의 발전은, 핀다로스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으로 유기적이며 지속적이고 필연적이다. 이는 역사 연구가 흔히 사용하는 반(半)자연주의적 의미의 '진화'가 아니라, 그리스 정신의 원형적 형태가 그 근본 구조에서 역사의 모든 단계를 지나면서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며 전개된 본질적 발전이다."

그리스 교육에는 교육적·윤리적·미학적 차원 사이의 공생 관계가 존재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연구는 이 상호 관계를 접하는 이들 마음속에 심어 주는 기능을 다했다. 예거는 이어서 강조한다.

"[...] 호메로스의 교육적 중요성은 분명 더 광범위하다. 그것은 교육 문제의 명시적 정식화나 특정한 도덕적 효과를 노린 몇몇 구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메로스 시는 정신의 방대하고 복합적인 산물로서 단일한 공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 뚜렷한 교육적 관심을 드러내는 비교적 후대의 단편들과 나란히, 묘사 대상 자체에 대한 관심이 시인의 숨은 도덕적 의도를 상정할 여지조차 없애 버리는 구절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폴리스마다 달랐지만, 호메로스는 공통이었다

물론 도시마다 교육의 여러 측면은 판이하게 달랐다. 아테네가 여성에게 완전한 교육을 허용하지 않은 반면, 스파르타는 여성의 교육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어떤 도시에서든 호메로스의 영향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참고 문헌

[1] JAEGER, Werner. Paideia: the formation of the Greek man. São Paulo: Martins Fontes, 1995, p. 60.
[2] Ibid.,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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