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육년기, 스페인 정치의 전환점
19세기 스페인 역사에서 진보 세력이 정치 무대를 주도했던 가장 짧은 국면 중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 육년기(Sexenio Democrático, 1868~1874)'였다. 1868년 혁명으로 이사벨 2세가 축출된 뒤 시작된 이 격동의 시기는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다시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낳았다.
이 시기 정부들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두 개의 진보적 헌법 제정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1869년 헌법으로, 과두적인 부르봉 왕조 모델과는 거리가 먼 의회군주제를 도입했다. 다른 하나가 바로 1873년 헌법, 즉 스페인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 헌법이다.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한 최초의 공화헌법
그러나 1873년 헌법은 실제 시행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마데오 1세가 퇴위하고 제1공화국이 선포된 직후인 1873년, 입헌의회는 연방공화제 헌법 초안을 작성해 심의에 들어갔다. 이 헌법은 같은 해 6월 하원을 통과했지만, 정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요동쳤다. 카를리스타 전쟁, 급진적인 칸톤 운동, 잇따른 쿠데타 기도 속에서 헌법을 공포할 여건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결국 1874년 1월 파비아 장군의 쿠데타로 의회가 해산되면서 이 헌법은 공식적으로 선포되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1873년 헌법 '라 노나타'의 주요 특징
비록 시행되지는 못했지만, 이른바 '라 노나타(La Nonata)'로 불리는 이 헌법 초안은 당대 가장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여전히 연구 가치가 크다. 핵심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연방공화제: 스페인을 안달루시아, 아라곤 등 역사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러 구성국의 연합체, 즉 연방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중앙과 지방 간 권한 분배를 명문화했다.
- 국민주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선거권 확대를 통해 정치 참여의 폭을 넓혔다.
- 약한 행정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입법부 중심의 권력 구조를 설계해 독재의 가능성을 차단하려 했다.
- 종교의 자유: 국교제도를 폐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길을 열었다.
- 지방 자치 확대: 시·지역 단위의 자치권을 폭넓게 인정해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무산된 이유와 역사적 의의
1873년 헌법이 좌초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었다. 연방주의 세력 간의 내분, 카탈루냐와 안달루시아 등지에서 벌어진 급진적 칸톤 운동, 지속된 재정 위기, 그리고 군부의 개입이 대표적이다. 극심한 정치 혼란 속에서 헌법 공포는 계속 미루어졌고, 마침내 1874년 말 부르봉 왕정복고와 함께 공화제 실험 자체가 종언을 고했다.
그럼에도 1873년 헌법은 스페인 헌정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연방주의, 지방자치, 종교의 자유, 보편적 선거권 등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을 앞서 담아냈다는 점에서, 단 하루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에도 스페인 최초의 공화헌법이라는 역사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