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911년~1204년: 바이킹에서 노르만인으로, 노르망디의 역사

911년~1204년: 바이킹에서 노르만인으로, 노르망디의 역사

911년: 단순왕 샤를, 노르망디를 바이킹에게 할양하다

롤로(Rollo)와 그의 무리는 노르웨이나 덴마크 등 북유럽 출신으로, 새로운 땅을 갈구하던 바이킹들이었다. 911년, 그들은 샤르트르(Chartres) 성을 공격했으나 네우스트리아 변경백 로베르에게 격퇴되었다. 이후 긴장을 완화하고 적대적인 위협으로 여겨지던 바이킹들을 왕국 안으로 통합하기 위해, 서프랑크의 국왕 샤를 3세(단순왕)는 롤로에게 오늘날의 노르망디(Normandy)에 해당하는 영토를 하사했다.

그 대가로 롤로는 프랑크 왕국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며, 국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이로써 바이킹 지도자 롤로는 노르망디 초대 공작이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유럽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는 아직 '바이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인들은 이들을 '북방에서 온 사람들', 즉 '노르만(Northmen)' 또는 '이교도'(비기독교인)라고 불렀다. 바로 여기서 바이킹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노르만인(Normans)'이라는 명칭이, 그리고 그들의 영토를 뜻하는 '노르망디(Normandy)'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911년~1204년: 바이킹에서 노르만인으로, 노르망디의 역사

1066년: 정복자 윌리엄,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다

롤로의 후손인 노르만디 공작 윌리엄, 이른바 '정복자 윌리엄'(사생아 윌리엄 혹은 노르망디의 윌리엄이라고도 불림)은 잉글랜드 침공에 나섰다. 1066년 10월 14일, 그는 헤이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과 맞붙었다. 전투 끝에 해럴드는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노르만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다.

윌리엄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참회왕)가 자신을 왕위 계승자로 지목한 약속을 근거로 삼아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잉글랜드 전역에 걸쳐 수많은 성채(castle)를 축조하여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자신에게 복종을 맹세한 유력 귀족들에게 토지를 하사함으로써 봉건 질서를 확립했다. 이 사건은 이후 잉글랜드의 언어, 문화, 정치 구조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으로 불린다.

1130년~1204년: 노르만인,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의 주인이 되다

노르만인들의 활약은 잉글랜드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중해까지 진출하여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정복했다. 1130년, 노르만 출신 백작 로제르 2세(Roger II)가 시칠리아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시칠리아 왕국이 탄생했다. 이후 약 60년간 노르만 왕들은 시칠리아 섬은 물론 남부 이탈리아 지역을 다스렸다.

시칠리아의 노르만 왕국은 라틴·그리스·아랍 문화가 공존하던 독특한 문명권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팔레르모 대성당 등 당시 건축물은 그 화려함을 지금도 전해준다.

한편 본거지였던 노르망디 본토는 1204년,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오귀스트)가 잉글랜드 왕 존(무지왕)으로부터 노르망디를 빼앗으면서 프랑스 왕령에 편입되었다. 이로써 911년 롤로의 도래로 시작된 노르만인의 시대는 거의 30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