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로만 알던 인디언 추장 포와탄, 실존 인물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덕분에 우리는 인디언 추장 포와탄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포카혼타스의 아버지였던 이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존 스미스와의 만남은 실제로 어땠을까? 영화 속 낭만적인 삼각관계 뒤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버지니아 식민지의 탄생
17세기 초, 잉글랜드는 스페인에 이어 아메리카 정복에 나섰다. 새로운 식민지를 세워 미개척의 인디언 세계에서 한 조각을 차지하려 했던 제임스 1세는 개척단을 현지로 파견했다. 역사가 질 르포르(Jill Lepore)는 저서 『우리, 하나의 나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606년 그는 헌장을 반포해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흔히 버지니아로 알려진 아메리카의 땅'에 정착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는 그곳을 자신의 소유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이 땅들이 '그리스도교 군주나 백성에게 소유된 적이 없었고', 원주민들은 '어둠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뜻이었다.

▲ 포와탄의 대관식
물론 강요된 주권에 대해 원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잉글랜드인들은 스페인식 정복 대신 정착 전략을 택하고 최대한 많은 원주민을 '유일한 참된 신앙'으로 개종시키려 했지만, 결국 결과는 늘 그래왔듯이 비극으로 흘러갔다.
문제투성이였던 시작
1606년 아메리카행 배에 올랐을 때 존 스미스는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스페인군 및 투르크군과의 전투 경험은 물론, 포로 생활과 탈출까지 겪은 베테랑이었다. 버지니아 회사가 모집한 잉글랜드인들이 제임스타운 식민지를 세우려던 미지의 땅으로의 항해는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곧 드러난 사실은, 이 젊은 군인이야말로 새 땅을 개척하는 사람들 중 가장 유능한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이었다.
배 선실의 상자 안에 봉인되어 있던 밀서에 따르면, 존 스미스가 총독으로 선출되어 있었다. 봉인은 배가 해안에 닿은 뒤에야 열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스미스가 통치해야 할 공동체는 극도로 게을렀다. 성실한 노동은 뒷전인 채 그들은 곧바로 현지 주민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전문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총독 본인의 기록에 따르면 바다를 건너온 사람 중 목수는 단 한 명, 대장장이는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숙녀들, 상인들, 군인들, 방탕아들 따위'로 채워져 있었다.
옷을 교환하다 — 두 세계의 만남
굴하지 않은 존 스미스는 일하지 않는 자에게 먹이를 주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이미 상처 입은 인디언과의 관계를 구원하기 위해 외교에 나섰다. 당시 식민지는 주변 부족들을 통치하던 포와탄 추장의 영토 안에 있었다.
외교 행위의 일환으로 총독은 인디언 추장의 대관식을 거행했고, 이 자리에서 제임스 국왕이 보낸 진홍색 망토를 그에게 선물했다. 아마 그 보답으로 포와탄은 자신의 망토를 스미스에게 건넸는데, 이 망토는 사실상 그의 영토를 그린 지도이기도 했다. 질 르포르는 이 선물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은 돌로 만든 칼로 사슴 가죽을 다듬고, 갈비뼈로 가죽에서 살과 지방을 벗겨냈다. 가죽은 재와 곡물 발효액에 담근 뒤 나무틀에 펴서 말리고, 꼬아 만든 힘줄 실로 꿰매었다.
꿰매고 물들인 가죽 위에는 수백 개의 작은 연안 고둥껍데기를 붙였고, 34개의 원형 무늬 사이로 흰꼬리사슴과 퓨마에 둘러싸인 인물 형상을 수놓았다. 그 인물은 그들의 지배자였고, 동물들은 그의 수호정령이며, 원형 무늬는 그가 다스리는 마을들을 상징했다. […] 아마도 그는 사슴 가죽을 망토로 사용했을 것이고, 조상을 기리는 데 썼을지도 모른다. […]
1638년 한 잉글랜드인이 잉글랜드 박물관에서 이것을 보고 힘줄 실로 꿰맨 사슴 가죽 옷을 '버지니아 왕의 망토'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포와탄의 망토였고, 동시에 그의 영토를 보여주는 지도이기도 했다.
위대한 지도자, 와훈소나코크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포와탄이 그 화려한 의식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알 수 없다. 옷을 교환하는 행위가 그에게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영향권 안에서 인디언 지도자의 자리는 해외의 왕이 대관식을 통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출신과 실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가들은 와훈소나코크(Wahunsunacock)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가 1547년경에 태어났다고 추정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오늘날 리치먼드 인근 여러 부족에 대한 통치권을 물려받았다. 가장 신빙성 있는 가정에 따르면,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약 30개 부족, 즉 총 1만~1만 5천 명에 이르는 영역까지 확장했다. 잉글랜드인들이 그를 '포와탄'이라 불렀는데, 이는 본래 제임스강변에 있는 그의 고향 마을 이름이었다.

▲ '대관식'의 보답으로 포와탄은 존 스미스에게 자신의 망토를 건넸다
1607년, 사냥 중 와훈소나코크의 동생 오프차노코코(Opchanacanough)에게 붙잡힌 존 스미스는 추장 앞에 끌려왔다. 1624년에야 집필된 이 잉글랜드인의 기록에 따르면, 추장의 딸이 그가 새로 온 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 딸을 포카혼타스로 알고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그녀의 본명은 마토아카(Matoaka)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장면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포와탄은 처음부터 스미스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며, 이는 흰 사람을 연합 부족에 받아들이는 의식을 수행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유사한 오해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해석이다.
남겨진 왕실의 유산
1609년 존 스미스는 불만을 품은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아메리카에서 쫓겨나듯 떠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채찍 아래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고, 총독이 떠나자 그들은 인디언을 약탈하는 데만 전념했다. 전쟁이 곧바로 일어났고, 1613년 존 롤프와 포카혼타스의 결혼으로 잠시 중단되었다. 일부 단서에 따르면 이 부부는 실제로 서로 사랑했고, 추장의 딸은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자발적으로 동화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레베카(Rebecca)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 포카혼타스가 존 스미스를 구하는 장면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포와탄은 1618년 세상을 떠났고, 권력은 동생들인 옵티차팜(Optichapam)과 오프차노코코에게 넘어갔다. 후자가 주도권을 잡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지니아에서 침입자를 몰아내려 했다. 1622년 그는 유명한 제임스타운 학살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인디언들은 347명의 식민지 개척자를 살해하고 70개의 정착지를 파괴했다.
1635년, 포카혼타스의 아들 토머스 롤프가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후손들은 유럽과 인디언의 피를 함께 이어받은 '버지니아 최초의 가문들(First Families of Virginia)'로 꼽힌다. 또한 마타포니족과 파타워멕족은 포와탄의 혈통이 포카혼타스의 첫 결혼에서 얻은 딸 카오키(Ka-Okee)를 통해서도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디즈니의 동심 넘치는 이야기 뒤에, 두 세계의 피와 비극이 얽힌 진짜 역사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