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코미디 시리즈 『알로! 알로!』('Allo 'Allo!)의 르네 역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고든 케이(Gorden Kaye). 하지만 그의 실제 삶은 여성들에게 끌리는 프랑스 카페 주인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평생 숨겨온 비밀, 그리고 고독 속에서 잊힌 채 맞이한 최후까지, 그의 인생은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어린 시절, 그리고 방송과의 첫 만남
고든 케이는 1941년 4월 7일 영국 허더스필드에서 아버지 해럴드와 어머니 그레이스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ARP(공습 경보 대책 조직)에 참여했고, 이후 트랙터 공장의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든은 아버지의 길을 따를 생각이 없었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육을 접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섬유 공장, 와인 회사, 트랙터 공장 등을 거치며 생계를 꾸렸죠. 허더스필드 병원 라디오를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1965년에는 비틀스(The Beatles)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라디오 작업은 그에게 진정한 커리어의 첫걸음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고든은 많은 내적 갈등을 안고 있었고, 과체중이었던 탓에 매우 폐쇄적이고 내성적인 소년이었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그가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연극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고, 프로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명성으로 가는 길
고든 케이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라디오 드라마 출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TV 연극 무대에 섰고, 마침내 볼턴 옥타곤 극장(Bolton Octagon Theatre)에서 무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체호프의 『벚꽃 동산』, 핀터의 『귀향』, 오스본의 『루터』 등에 출연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에는 TV 작품에도 캐스팅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 표기 'Gorden'은 영국 배우 협회(Equity)의 오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후 그대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극장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ITV의 장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제작진의 눈에 띄었고, 1년간 함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TV 시리즈에 단역과 조연으로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맨스필드 파크』, 『서비스됩니까?』(Are You Being Served?), 『노아 부인의 항해』 등에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된 결정적 역할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982년, 고든은 나치 점령하 프랑스의 카페 주인 역할을 제안받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수락했고, 이것이 바로 『알로! 알로!』의 주인공 르네였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배우 본인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총명하고 눈치 빠르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르네는 목숨을 위협하는 독일군, 무능한 저항운동 조직원들, 가족의 위기, 질투 많은 아내와 얽힌 소동 속을 살아갑니다. 특히 여성들이 팔벼렁 안기듯 몰려드는 '여심 자석' 같은 면모는 고든이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원치 않는 대중의 시선
드라마에서 이베트(Yvette) 역을 맡았던 배우 빅키 미셸(Vicki Michelle)은 훗날 인터뷰에서 케이와의 호흡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시절의 게이였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포옹 장면을 찍을 때마다—그건 매 에피소드마다 있었죠—저는 정말 애를 써야 했습니다. 그의 몸 전체가 저를 밀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그 장면은 제가 거의 혼자 만들어야 했습니다."
르네 역할은 고든에게 BAFTA 후보 지명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건강하지 못한 타블로이드의 관심도 불러왔습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으며 타블로이드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결국 1980년대 후반 고든 케이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직접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1989년에는 힐러리 보너(Hilary Bonner)와 함께 자서전 『르네와 나: 일종의 자서전(René & Me: A Sort of Autobiography)』을 출간했습니다. 평소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던 그였지만, 이 책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닌 악마들과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적어냈습니다.
잊혀져 가던 말년
1990년 1월 25일, 사이클론 '다리아(Daria)'가 북서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순간 풍속은 시속 119km에 달했고, 최대 돌풍은 시속 172km를 기록했습니다. 이 폭풍우 속에서 고든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나무 광고판이 그의 혼다 차량 앞유리를 부수고 배우의 머리에 꽂혔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처음에는 몇 시간에 걸친 뇌수술 후 남은 흉터만이 이 사고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기억력은 점점 나빠졌고, 결국 치매 진단을 받게 됩니다. 고든은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7년 1월 23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고향 허더스필드에서 『알로! 알로!』의 동료들이었던 빅키 미셸, 수 호지(Sue Hodge), 김 하트먼(Kim Hartman), 그리고 드라마에서 레오폴트 폰 플로켄슈투펜 장군 역을 맡았던 켄 몰리(Ken Morley) 등이 배웅했습니다.
비록 고든의 말년은 잊혀진 채로 흘러갔지만, 그는 TV 코미디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 중 하나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 Kaye, G., Bonner, H., 『René & Me: A Sort of Autobiography』, Pan Books, 1990.
- Viva.pl 관련 기사, 2021년 8월 16일 확인.
- The Guardian 고든 케이 부고 기사, 2021년 8월 16일 확인.
- The Bolton News 추모 기사, 2021년 6월 12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