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프랑스 르네상스의 보석, 루아르 계곡의 성들

프랑스의 정원, 루아르 계곡

'프랑스의 정원(The Garden of France)'이라 불리는 루아르 계곡은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국왕들이 가장 사랑한 거처였습니다. 이곳의 건축물 대부분은 프랑스 르네상스기(15~16세기)에 새로 지어지거나 대대적으로 개조된 것으로, 왕권이 루아르 강과 그 지류 유역에 자리 잡고 있던 시절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들은 중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중세 건축의 중요한 특징들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걸출한 기념물들이 밀집해 있다는 점은 루아르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루아르 계곡의 대표적인 성들

앙부아즈 성 (Château d'Amboise)

1498년 샤를 8세는 문설주에 머리를 부딪힌 뒤 불과 28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앙부아즈로 초청했고, 위대한 화가는 1519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이 성은 1560년 종교전쟁의 전조가 된 '앙부아즈 음모 사건'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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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이르리도 성 (Château d'Azay-le-Rideau)

프랑수아 1세의 왕실 재무관이 지은 성입니다. 소설가 발자크는 이 성을 '앙드르 강에 박힌 다면체 다이아몬드'라고 묘사했으며, 아자이르리도는 오늘날 루아르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성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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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아 왕립성 (Château Royal de Blois)

블루아 백작의 중세 성은 루이 12세의 주요 거처가 되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가 즉위하자 그의 아내 클로드 드 프랑스는 앙부아즈 성을 떠나 궁정을 블루아로 옮기기 위해 성을 다시 꾸몄지만, 1524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폰텐블로 성을 택하고 블루아를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이 성은 프랑수아 2세와 샤를 9세 등 후계 왕들의 주요 거처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앙리 3세는 1576년과 1588년 블루아에서 삼부회를 소집했으며, 이후 앙리 4세가 성을 차지한 뒤 그의 미망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유폐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감상할 수 있는 블루아 성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진 세 개의 날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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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르 성 (Château de Chambord)

1519년, 오래된 요새 터 위에 사냥용 별장을 짓기 위해 샹보르 부지가 선정되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 사후 프랑스 왕들은 이 성을 방치했고, 성은 서서히 퇴락해 갔습니다. 이후 루이 14세가 1684년 개축 공사를 진행했으며, 1670년에는 극작가 몰리에르가 이곳에서 『부르주아 신사』의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성을 베르티에 원수에게 하사했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는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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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당 성 (Château de Châteaudun)

샤토당 성은 다음의 주요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높이 31m, 지름 17m의 거대한 철탑
  • 생트샤펠(Sainte-Chapelle)
  • 뒤누아 관(Dunois)
  • 롱그빌 관(Longu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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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니 성 (Château de Cheverny)

성의 토지는 루이 11세의 군무재정관이었던 앙리 위롤트가 매입했으며, 현재 소유주인 비브레 후작은 그의 직계 후손입니다. 국가에 대한 사기 혐의로 왕실에 환수된 뒤, 앙리 2세는 정부(情婦)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이 성을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쉬논소 성을 더 선호해 결국 재산을 최초 소유주의 아들에게 되팔았습니다.

『팅팅』의 작가 에르제는 이 성에서 영감을 받아, 양쪽 끝의 두 탑을 잘라낸 형태로 선장 하독의 저택인 '물랭사르 성'을 창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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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와르강 샹몽 성 (Château de Chaumont-sur-Loire)

10세기에 블루아 백작 우드 1세가 앙주 백작의 공격으로부터 블루아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요새를 세웠습니다. 루이 11세는 1455년, '공공선 동맹' 사건 당시 왕권에 반기를 든 피에르 당부아즈를 응징하기 위해 샹몽 성을 불태우고 완전히 철거하라고 명했습니다. 이후 성은 요새로서의 견고한 외관은 유지하면서도 르네상스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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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논소 성 (Château de Chenonceau)

이 성은 프랑수아 1세의 재무국 서기관이 지었습니다. 재정 감사에서 횡령이 적발되면서 프랑수아 1세는 그의 후손들에게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토지와 성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1535). 이후 앙리 2세는 이 성을 연인인 발루아 공작부인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선물했습니다.

1559년 기사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근위대장 가브리엘 드 몽고메리의 창에 치명상을 입고 앙리 2세가 사망하자, 섭정이 된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왕의 마음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쉬논소 성을 왕실에 돌려내도록 강요했습니다. 이처럼 성의 역사는 소유주이자 건축 후원자였던 여성들로 빚어졌습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딸들과 며느리들을 위해 헌정된 '5왕비의 침실'(마리 스튜어트, 마르그리트 드 프랑스, 루이즈 드 로렌, 엘리자베트 폰 외스터라이히,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이 대표적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한쪽은 독일 점령지구, 다른 한쪽은 자유지구에 걸친 분계선 위에 놓이는 특별한 역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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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농 성 (Château de Chinon)

시농 성은 오래된 로마 시대 요새 위에 세워졌으며, 역사적 필요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축조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그의 아들들인 무지왕 존, 사자심왕 리처드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1429년에는 잔다르크가 이곳에서 왕태자 샤를 7세를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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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제 성 (Château de Langeais)

10세기 말에 지어진 중세 요새로,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지배 아래 사자심왕 리처드에 의해 확장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오귀스트)가 1206년 탈환했으나, 백년전쟁 중 영국군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프랑스 땅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조 요새로 여겨집니다. 1465년 루이 11세가 재건을 명했으며, 이 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샤를 8세와 브르타뉴의 안 드 브르타뉴의 결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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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슈 성 (Château de Loches)

로슈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곳은 '카스트룸 로카에(Castrum Locae)', 즉 '늪지의 진영'이라 불렸으며, 이것이 오늘날 로슈라는 지명의 유래로 추정됩니다. 흥미롭게도 이곳은 오늘날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아, 많은 이들이 투렌 지방의 이 일각에 정착하며 플랜태저넷 조상들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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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소로 성 (Château de Montsoreau)

강바닥 위에 직접 지어진 유일한 루아르의 성인 몽소로 성은 1450년 샤를 7세의 측근 고문이었던 장 2세 드 샹브가 축조했습니다. 그 역사에는 마리 스튜어트, 안 드 브르타뉴, 클로드 드 프랑스, 프랑수아 1세 등 수많은 인물이 얽혀 있습니다. 시대를 앞선 독창적인 건축 양식 덕분에 로댕부터 터너, 플로베르, 알렉상드르 뒤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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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뮈르 성 (Château de Saumur)

소뮈르 성은 앙주 백작과 그의 플랜태저넷 상속자들의 손에 들어갔고, 이후 카페 왕조의 필리프 2세(오귀스트)가 왕실에 편입시켰습니다. '선왕 르네'라 불린 앙주의 르네는 작가이자 교양인, 요새 건축가로서 성의 전반적인 쾌적함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한편 덜 영광스러운 시절도 있었는데,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성은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시간경』 필사본 9월 달력 페이지에 성 아래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과 함께 그려져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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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랑세 성 (Château de Valençay)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요청으로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가 이 성을 매입해 외국 귀빈들을 접대하는 저택으로 활용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일부 소장품, 특히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 같은 고대 조각상과 데생 컬렉션, 왕관 보석들이 이곳에 피신해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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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드리 성 (Château de Villandry)

르네상스 시대에 루아르 강변에 지어진 마지막 대형 성입니다. 1189년 7월 4일, 잉글랜드의 헨리 2세 플랜태저넷이 프랑스의 필리프 2세(오귀스트)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콜롱비에의 화약'(비양드리의 중세 명칭)이 바로 이 요새에서 체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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