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일리아스의 전사들 – 트로이 평원의 미르미돈과 미케네 장갑보병

일리아스의 전사들 – 트로이 평원의 미르미돈과 미케네 장갑보병

호플리테스는 폴리스의 산물일까?

고전기 그리스 전장을 지배했던 호플리테스(중장창병)가 도시국가(폴리스) 제도의 탄생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지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통념이다. 사실 이미 후기 미케네 시대의 중장보병도 호플리테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싸웠다.

트로이 전쟁 이전의 미케네 보병

트로이 전쟁(기원전 13세기 중반)까지 미케네 군대 보병의 기본형은 팔각형 또는 탑 모양의 대형 방패와 길이 3m를 넘는 두꺼운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였다. 이들은 팔랑크스에 가까운 깊고 조밀한 대열을 이루어 전투에 임했다. 『일리아스』의 묘사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보병은 트로이아 측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필로스, 크레타, 살라미스 등의 세력은 트로이 평원에서조차 옛 전투 방식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다른 미케네 국가들은 전차 운용과 무장 체계의 변화, 그리고 전쟁관 자체의 변화에 발맞춰 전술을 개편했다. 물론 처음부터 더 유연한 전투 방식을 채택한 국가들도 일부 존재했다.

무장의 변화: 장창에서 투창까지

이 시기 아카이아(그리스인) 중장보병은 고전기 호플리테스의 원형에 근접하게 되었으며, 전투 방식 역시 고전기의 '에크드로모스'(출격형 호플리테스)와 흡사했다. 긴 장창은 짧고 가벼워져 투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창으로 바뀌었고, 초기의 긴 검은 평균 칼날 길이 60cm 안팎의 직선형 단검 계열 검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기하학 시대 초기 호플리테스처럼 예비 투창을 추가로 지니고, 적과 접촉하기 전에 이를 던진 뒤 창과 검으로 백병전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패의 진화와 기동성 확보

거대한 팔각형·탑형 방패는 더 작은 원형 또는 약간 타원형에 가까운 방패로 교체되었다. 유명한 '전사 항아리(Warrior Vase)'에 그려진 방패와 초기 보이오티아산 호플리테스 방패가 바로 그 예이다.

이렇게 무장이 경량화된 아카이아 호플리테스는 지형을 불문하고, 적과 지형에 따라 조밀한 팔랑크스 대열 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산개 대열('펠타스트식')로 전환하며 싸울 수 있었다. 이는 기원전 5~4세기의 에크드로모이 호플리테스, 펠타스트, 나아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보행 부대들이 보여준 유연성과 맥을 같이한다.

'유동적인' 전투 양상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주로 이러한 유형의 전사를 묘사한다. 검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돌진하는 전사들의 모습이다. 이 시기의 전투는 훨씬 '유동적'이었고, 개별 전사 간의 일대일 격돌이 모인 성격이 강했다. 대열을 촘촘히 무릎 맞춘 경우는 주로 적 전차의 돌격을 받아낼 때뿐이었다.

후위에는 궁수들이 배치되어 포물선 사격으로 대열을 지원했다. 반대로 투사 무기를 지닌 보병과 맞설 때는 적의 발사체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열 간격을 벌리고, 신속하게 접근해 승부를 냈다.

프로마코이: 최전열의 용사들

최전열에 선 병사들은 '프로마코이', 즉 '싸움의 선두자'라 불렸으며, 거의 예외 없이 기하학 시대 종 모양 흉갑과 유사한 형태의 흉갑을 착용했다. 이들의 방패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어 공격용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산악 경보병들의 지원

아카이아 호플리테스는 훗날 펠타스트처럼 특정 지역 출신 부대의 산개 전투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주로 그리스 산악지대 출신으로, 전통적으로 뛰어난 경보병을 배출해 온 지역들이었다.

로크리스, 포키스, 아이톨리아뿐 아니라 에피루스와 필로스 출신 부대도 여기에 속했다. 필로스의 소위 '네스토르 왕궁' 벽화에는 투구를 쓰고 단창 겸 투창과 검으로 무장한 필로스 경보병이 산악 야만족을 격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킬레우스의 미르미돈: 엘리트 부대의 비결

특별한 존재는 바로 아킬레우스의 미르미돈 부대였다. 미르미돈 역시 원형 방패, 창, 투창, 검으로 무장했고, 프로마코스급 전사들은 투구와 흉갑을 확실히 갖추었다. 그들이 엘리트였던 이유는 당대 최첨단 무기를 들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구사한 공격적 전술에 있었다.

미르미돈은 다른 아카이아 호플리테스와 같은 방식으로 싸웠지만, 빠르고 과감한 돌격으로 적을 기습해 대열을 붕괴시키는 데 의존했다. 상대가 충분한 훈련과 결속력, 침착함을 갖추지 못했다면 미르미돈의 기습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아군이 미르미돈과 그 지휘관 아킬레우스를 얼마나 경외하고 두려워했는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엘리트라 불린 이 부대의 규모는 생각보다 작아서, 서사시에 따르면 2,500명에 불과했다.

고전기 호플리테스의 '증조부'

이 시기의 아카이아 호플리테스는 기하학 시대에 창과 투창으로 무장한 호플리테스의 직계 조상이자, 기원전 5~4세기 영광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고전기 호플리테스의 '증조부'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