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카와 교과서와 용어집에는 '미트리다테스의 반란'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미트리다테스는 애초에 로마에 종속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트리다테스 전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리스 세계와 로마 세계가 정면으로 충돌한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미트리다테스 마누'라는 이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호칭은 낯설지 않지만, 예컨대 '대왕 요한' 같은 이름은 다소 어색하게 들립니다.
위대한 왕을 뜻하는 단어는 '왕(King)'이 아니라 '마누(Manu)'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훗날 등장하는 카롤루스도 카롤루스 대제, 즉 샤를마뉴로 불리는 것입니다.
미트리다테스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본받아 스스로를 '미트리다테스 마누'라 칭했다고 전해집니다.
미트리다테스가 그리스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해서,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세계의 챔피언은 단연 이 미트리다테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목숨을 노려진 유년기
미트리다테스 6세는 폰토스의 땅에서 미트리다테스 5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말하자면 타고난 왕이었습니다.
폰토스 왕국은 흑해를 마주한 소아시아의 나라로, 알렉산드로스 이후 그리스 문화를 계승한 땅입니다. 문화적 수준에서는 당시 로마보다 오히려 높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미트리다테스 6세의 어머니 라오디케는 교양 있는 여성이었고, 미트리다테스 6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아버지 미트리다테스 5세는 그가 12세 때 사망했습니다. 원래라면 왕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머니 라오디케가 왕국의 정치를 장악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전승에 따르면 어머니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미트리다테스는 여러 해 동안 황야를 떠돈 뒤 귀환하여 어머니를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 사례는 매우 많지만, 세계사에서 어머니가 친아들의 목숨을 거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네로처럼 어머니를 죽인 인물은 있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즉위한 미트리다테스는 곧바로 야심을 드러냅니다. 주변 국가로의 확장을 시작했고, 이윽고 로마의 동맹국 비티니아와의 갈등에서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막이 오릅니다.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로마 입장에서는 동맹국 비티니아가 공격받았기에 그리스 방면으로 군대를 파견한 것이지만, 처음부터 로마를 도발하기 위해 조성된 상황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로마측 기록에 따르면 미트리다테스 6세는 소아시아에 살던 8만 명의 로마 시민을 학살했습니다.
어느 쪽 기록이 더 신뢰할 수 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로마와 미트리다테스 사이에 전쟁이 실제로 벌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곧 로마와 그리스의 대결이라 할 수 있으며, 소아시아와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두고 벌인 싸움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마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보여준 완승이었습니다.
물론 상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휘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술라와 맞붙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격차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스 측은 만 단위의 피해를 입은 반면, 로마는 거의 손실 없이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는 로마 세계가 군사적으로 그리스 세계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고안한 전술을 흡수한 것이야말로 로마 강함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병력 면에서도 미트리다테스 측은 10만에 육박한 반면, 로마 측은 약 3만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술라는 이 무렵 경쟁자 마리우스에게 로마를 빼앗겨 유랑군 신세가 된 상태였고, 충분한 보급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다르다누스 조약으로 막을 내렸고, 미트리다테스는 여기서 조용히 지내야 했는데…
제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술라는 강화 조약을 체결한 뒤 그리스 지역을 무레나에게 맡기고, 본인은 로마로 행군을 떠났습니다.
미트리다테스는 술라가 없다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 무레나와의 전쟁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술라가 없었다면 승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전쟁 덕분에 카파도키아를 손에 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술라가 죽었습니다.
100년에 한 명꼴로 등장하는 지휘관입니다.
그런 계산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는 그리스 세계의 챔피언이 되기 위해 로마의 동맹국 비티니아 침공에 다시 나섭니다.
로마 측 지휘관은 술라의 심복이기도 한 루쿨루스였습니다. 처음에는 루쿨루스에게 밀렸지만, 이윽고 전황은 미트리다테스에게 유리해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된 원로원은 루쿨루스를 해임하고, 스페인을 평정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천재 지휘관 폼페이우스를 그리스에 파견했습니다.
술라가 없으면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미트리다테스 6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술라마저 능가하는 인재였습니다.
폼페이우스는 실제로 단 한 번 패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단 한 번의 상대가 바로 세계사적 영웅 카이사르입니다.
미트리다테스도 불운하지만, 폼페이우스 역시 불운한 인물입니다. 기원전 1세기라 불리는 내란의 시대에는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처럼 세계사에 강렬한 이름을 남기는 지휘관들이 잇달아 등장했으니까요.
미트리다테스가 그런 천재들을 이길 도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친아들의 배신까지 겹치면서,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패배만 거듭한 것처럼 보이는 미트리다테스 6세였지만, 주변 국가들 상대로는 무적이었고, 로마의 평범한 지휘관들을 꺾는 등 원래 상당히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불운은 술라, 폼페이우스 같은 초월적인 지휘관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데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남자는, 마침내 친아들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것 역시 일종의 인과응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